‘유로 1976’ 결승전. 체코슬로바키아와 서독은 120분을 2-2로 팽팽하게 맞선 뒤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체코의 미드필더 안토닌 파넨카가 마지막 키커로 나섰다. 골키퍼가 한쪽으로 다이빙한 순간, 그는 아무도 예상 못한 슛으로 승부를 마감했다. 골문 한복판으로 느리게 차 넣은 것이다. 이른바 ‘파넨카킥’이다.

축구에서 페널티킥은 ‘11m 룰렛’으로 불린다. 키커나 골키퍼나 관중이나 모두 피를 말린다. 강하게 구석으로 차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파넨카는 통념을 통렬하게 깬 창의적인 슛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후 지단, 피를로, 메시 등 고수들이 종종 파넨카킥으로 골키퍼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냥 서 있으면 되지 않을까. 축구 통계에 따르면 골키퍼가 페널티킥 상황에서 좌우 한쪽으로 몸을 날린 경우가 94%였고, 서 있는 경우는 6%에 그쳤다. 반면 키커가 찬 방향은 골문을 3등분했을 때 왼쪽 32%, 오른쪽 39%, 가운데 29%로 대동소이했다. 방어 성공률은 왼쪽 14%, 오른쪽 12%인 반면 서 있을 때는 33%였다.

방어 확률이 낮은데도 골키퍼는 왜 몸을 날릴까. 슛은 0.5초면 골문에 도달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골키퍼도 반응속도가 0.7초 이상이다. 그럼에도 그냥 서 있다 골을 먹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심리적으로 편하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행동편향(action bias)’이다. 토라진 애인을 달래려다 엉뚱하게 헛다리짚어 화를 돋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얘기다.

행동편향은 국가만능주의에 젖은 관료나 정치인 집단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무것도 안 했을 때의 비난을 의식해 무엇이든 자꾸 손댄다. 기획재정부는 해마다 세제를 대폭 손질하고, 교육부는 입시 제도를 바꿨다. 그 결과 세법은 누더기이고, 대입 전형은 3000개가 넘는 지경이다. 정치인의 행동편향은 시쳇말로 ‘관심종자’인 직업 특성에서 비롯된다. 자기 이름이 보도되는 것은 본인 부고 빼고 다 이득이라고 여긴다. 비난보다 잊히는 것을 겁내는 점에선 연예인과도 닮았다. 황당 입법이나 저속한 막말을 서슴지 않는 이유다.

최근 탄핵정국 속에 국회가 일을 안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2월 입법 건수(44건)가 작년 2월의 5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라는 게 기업활동 범죄화, 경제민주화 등 반(反)시장 과잉입법이 아닌가. 국회가 판판이 놀수록 되레 경제는 잘 돌아간다. 허접한 규제 입법을 남발할 바에야 차라리 가만있어라!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