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보고 좋은 딜(거래)을 하자는 게 CVC의 글로벌 철학입니다. 한국 시장에서도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를 늘려 갈 겁니다.”

영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CVC캐피털파트너스의 임석정 한국 회장(사진)은 8일 기자와 만나 “국내외 인수합병(M&A) 매물을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CVC의 국내 거래 실적이 오랫동안 자취를 감춘 상황에서 일각에서 제기된 ‘한국 시장 철수’ 가능성도 일축했다. 임 회장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2015년 JP모간에서 CVC로 둥지를 옮긴 뒤 처음이다.

임 회장은 “신규 진출 시장에서도 장기적 관점으로 일하는 게 CVC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임 회장에 따르면 CVC는 스페인의 경우 1998년에 첫 진출한 뒤 2005년 이후에야 첫 거래를 성사시켰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은 거래가 하나도 없어 ‘위기설’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최근 스페인의 대형 병원 체인 퀴론살루드(QuironSalud)를 성공적으로 매각하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 시장에서 제기된 ‘CVC 위기설’은 과도한 우려라는 것이 임 회장 설명이다. 임 회장 부임 이후 CVC 한국팀이 약 16개월 동안 투자를 검토한 매물 목록은 9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운데 서너 개 매물은 적극적으로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임 회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은 딜을 만들기 위해 물밑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로 보고 있는 업종은 e커머스(전자상거래)와 서비스헬스케어 등이다. 임 회장은 “제조업체는 대체로 영업이익률이 낮고 성장 가능성이 제한돼 인수 매력이 떨어진다”며 “전자상거래 분야도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지만 아직 대부분 업체들이 손실을 내고 있어 시간을 두고 투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소셜커머스보다는 택배 등 전자상거래 주변 생태계를 이루는 산업군을 주로 보는 것도 그런 이유라는 설명이다.

임 회장은 “소비자에게 힘 있는 브랜드를 가진 B2C(기업과 개인 간 거래) 회사의 경우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거래만 고집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30~50% 정도의 소수 지분 투자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기존 경영진과 협력하면서 CVC의 사업 네트워크를 활용해 글로벌 회사로 키워 내겠다는 것이다. 실제 CVC 한국팀은 독자적 투자 외에국내 전략적투자자(SI) 등과 컨소시엄을 이룬 공동 투자 등도 활발히 검토하고 있다.

임 회장은 투자를 끝낸 뒤에도 “CVC의 전통적인 ‘가치 증대(value-add)’ 전략을 활용해 업체와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CVC는 투자 조직 외에 기업 운영 조직(operation team)을 별도로 두고 있다. 인수 전 단계부터 이 팀이 인수팀에 함께 참여해 경영효율성 향상 등 기업 가치를 키우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한다는 전언이다. 임 회장은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아쉬웠던 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라며 “CVC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활용해 좋은 회사를 키워 내는 모범사례를 조만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CVC는 2014년 109억유로 규모의 유럽 바이아웃펀드와 35억유로 규모의 아시아펀드를 조성했다. 한국 투자는 아시아펀드를 통해 이뤄진다. CVC는 현재 125억유로 규모의 7호 바이아웃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정소람/이동훈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