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 지배한 '달콤살벌한'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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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쎈여자 도봉순' 괴력소녀 캐릭터
히어로로 거듭나며 시청자에 카타르시스
'완벽한 아내'에선 뻔뻔·당당한 여성 보여줘
'당신은 너무…' 여성 주인공 2명 '워맨스' 형성
'힘쎈여자 도봉순' 괴력소녀 캐릭터
히어로로 거듭나며 시청자에 카타르시스
'완벽한 아내'에선 뻔뻔·당당한 여성 보여줘
'당신은 너무…' 여성 주인공 2명 '워맨스' 형성
“잠깐만 방 좀 둘러볼 수 있을까요?” “뭐야,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들어와서…겁도 없이 여자가….”
남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여자의 얼굴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심기가 불편해진 여자가 가볍게 손으로 걷어낸다는 게 그만 ‘힘 조절’에 실패하고, 남자는 뺨을 맞고 기절해버린다. 여자가 자신의 두 배는 돼 보이는 남자를 한손으로 끌고 오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한다. “에이~난 때리지도 않았는데 자기 혼자 뭐하는 거야. 아저씨, 제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세요.”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의 한 장면이다. 게임회사 사장 안민혁(박형식 분)의 개인비서인 도봉순(박보영 분)은 작고 아담한 체구다. 이런 도봉순이 험상궂게 생긴 남자를 의도치 않게 제압하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들의 변신이 시작됐다. ‘힘쎈여자 도봉순’, MBC 주말드라마 ‘당신은 너무합니다’, KBS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 등 독특한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주인공들의 직업은 별로 내세울 게 없다. 취업준비생 도봉순, 모창 가수 정해당, 비정규직 워킹맘 심재복까지 세대는 달라도 모두 비주류다. 하지만 이들은 여성은 지켜줘야 하는 ‘약한 존재’이며 진취적이지 못하고, 내조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존재라는 사회적 편견에 당당하게 맞선다. 이런 모습이 리모컨 주도권을 쥔 2040 여성 시청자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남녀 사이의 권력관계는 물리적인 ‘힘’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보통의 드라마에선 여자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는 장면으로 긴장감을 조성한 뒤 남자 주인공이 등장해 여자를 구해준다. ‘내 여자는 내가 지킨다’는 전형적 프레임이다. 하지만 ‘괴력’을 가진 도봉순은 이런 전형적인 남녀 관계를 뒤집어 버린다. 동네 깡패 정도는 가볍게 제압한다. 사장의 개인비서 겸 보디가드 역할까지 한다. 잔혹한 살인마의 여성납치 사건이 드라마의 큰 축인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피해자를 구해주는 건 멋진 남자주인공이 아니라 키 작은 ‘괴력 소녀’다.
여성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자신의 괴력을 숨기고 있는 도봉순은 ‘첫사랑’ 인국두(지수 분) 앞에선 늘 조신하고 연약한, 그래서 지켜줘야 하는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 도봉순의 모습과 인국두의 눈에 비친 도봉순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라 오히려 웃음을 준다. 살인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도봉순이 점차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고, 편견을 벗고 ‘여성 히어로’로 거듭나는 모습이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전망이다.
여성 주인공들의 ‘성장기’를 담은 작품도 많다. ‘당신은 너무합니다’는 스타 가수 유지나(엄정화 분)와 모창 가수 유쥐나로 살아가는 정해당(구혜선 분)의 얽히고설킨 인생사를 그린다. 세상을 떠난 모창 가수 너훈아 씨가 30년 동안 트로트 가수 나훈아의 그림자 인생을 살면서 “나훈아 씨를 닮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다 보면, 내 인생마저 가짜로 느껴져 공허할 때가 있다. 비록 가짜 나훈아로 살지만 내 인생은 진짜라는 걸 자식들은 알아주길 바란다”고 한 데서 모티브를 따왔다.
생계를 위해 모창 가수로 살아가야 하는 이의 애환과 설움을 그린 이 드라마에서 여성 주인공 두 사람은 인간적인 연대를 형성해 나간다. 우정과 성장은 주로 남자 주인공들의 몫이었던 기존의 드라마와 다르다. 정해당이 일하는 카바레에 우연히 찾아간 유지나는 취객으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유쥐나를 구해주며 “앞으로 누구든지 얘만 건드려 봐. 가수가 노래 부르는 사람이지 당신들의 장난감이야?”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른바 ‘워맨스’(우먼과 로맨스를 합친 신조어)다.
‘완벽한 아내’의 주인공은 아줌마다.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봐 왔던 ‘내조의 여왕’도,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속만 끓이는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여성상도 아니다. 평범한 아줌마지만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은 다 하면서 살아가는 아줌마다. 변호사 사무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심재복(고소영 분)의 업무 능력은 모두가 인정한다. 하지만 대학 중퇴에 아이까지 둘 딸린 아줌마여서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탈락한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아주 잘한 거 아시면 저를 뽑아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대학도 중퇴했고, 아줌마라서요?”라고 되묻는다.
최고의 적인 시어머니에게도 할 말은 다 한다. “반찬값이나 겨우 벌면서 유세”라는 시어머니에게 “그 반찬값으로 진욱 아빠 대학교 마쳤어요. 어머니 댁 생활비도 드리고요”라고 또박또박 대든다. “내 앞에서 잘난 척하면 안 된다”는 상사 강봉구(성준 분)에게는 “잘난 척할 만하니까 잘난 척하죠. 나보다 잘난 것도 없으면서 변호사랍시고 내 앞에서 깝치니까요”라고 대응한다. 남편과의 부적절한 관계에도 오히려 당당한 정나미(임세미 분)에게 날린 한마디는 “꿇어”였다. 여성 시청자들의 속을 뻥 뚫어주는 한마디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남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여자의 얼굴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심기가 불편해진 여자가 가볍게 손으로 걷어낸다는 게 그만 ‘힘 조절’에 실패하고, 남자는 뺨을 맞고 기절해버린다. 여자가 자신의 두 배는 돼 보이는 남자를 한손으로 끌고 오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한다. “에이~난 때리지도 않았는데 자기 혼자 뭐하는 거야. 아저씨, 제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세요.”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의 한 장면이다. 게임회사 사장 안민혁(박형식 분)의 개인비서인 도봉순(박보영 분)은 작고 아담한 체구다. 이런 도봉순이 험상궂게 생긴 남자를 의도치 않게 제압하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들의 변신이 시작됐다. ‘힘쎈여자 도봉순’, MBC 주말드라마 ‘당신은 너무합니다’, KBS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 등 독특한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주인공들의 직업은 별로 내세울 게 없다. 취업준비생 도봉순, 모창 가수 정해당, 비정규직 워킹맘 심재복까지 세대는 달라도 모두 비주류다. 하지만 이들은 여성은 지켜줘야 하는 ‘약한 존재’이며 진취적이지 못하고, 내조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존재라는 사회적 편견에 당당하게 맞선다. 이런 모습이 리모컨 주도권을 쥔 2040 여성 시청자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남녀 사이의 권력관계는 물리적인 ‘힘’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보통의 드라마에선 여자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는 장면으로 긴장감을 조성한 뒤 남자 주인공이 등장해 여자를 구해준다. ‘내 여자는 내가 지킨다’는 전형적 프레임이다. 하지만 ‘괴력’을 가진 도봉순은 이런 전형적인 남녀 관계를 뒤집어 버린다. 동네 깡패 정도는 가볍게 제압한다. 사장의 개인비서 겸 보디가드 역할까지 한다. 잔혹한 살인마의 여성납치 사건이 드라마의 큰 축인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피해자를 구해주는 건 멋진 남자주인공이 아니라 키 작은 ‘괴력 소녀’다.
여성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자신의 괴력을 숨기고 있는 도봉순은 ‘첫사랑’ 인국두(지수 분) 앞에선 늘 조신하고 연약한, 그래서 지켜줘야 하는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 도봉순의 모습과 인국두의 눈에 비친 도봉순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라 오히려 웃음을 준다. 살인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도봉순이 점차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고, 편견을 벗고 ‘여성 히어로’로 거듭나는 모습이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전망이다.
여성 주인공들의 ‘성장기’를 담은 작품도 많다. ‘당신은 너무합니다’는 스타 가수 유지나(엄정화 분)와 모창 가수 유쥐나로 살아가는 정해당(구혜선 분)의 얽히고설킨 인생사를 그린다. 세상을 떠난 모창 가수 너훈아 씨가 30년 동안 트로트 가수 나훈아의 그림자 인생을 살면서 “나훈아 씨를 닮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다 보면, 내 인생마저 가짜로 느껴져 공허할 때가 있다. 비록 가짜 나훈아로 살지만 내 인생은 진짜라는 걸 자식들은 알아주길 바란다”고 한 데서 모티브를 따왔다.
생계를 위해 모창 가수로 살아가야 하는 이의 애환과 설움을 그린 이 드라마에서 여성 주인공 두 사람은 인간적인 연대를 형성해 나간다. 우정과 성장은 주로 남자 주인공들의 몫이었던 기존의 드라마와 다르다. 정해당이 일하는 카바레에 우연히 찾아간 유지나는 취객으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유쥐나를 구해주며 “앞으로 누구든지 얘만 건드려 봐. 가수가 노래 부르는 사람이지 당신들의 장난감이야?”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른바 ‘워맨스’(우먼과 로맨스를 합친 신조어)다.
‘완벽한 아내’의 주인공은 아줌마다.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봐 왔던 ‘내조의 여왕’도,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속만 끓이는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여성상도 아니다. 평범한 아줌마지만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은 다 하면서 살아가는 아줌마다. 변호사 사무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심재복(고소영 분)의 업무 능력은 모두가 인정한다. 하지만 대학 중퇴에 아이까지 둘 딸린 아줌마여서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탈락한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아주 잘한 거 아시면 저를 뽑아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대학도 중퇴했고, 아줌마라서요?”라고 되묻는다.
최고의 적인 시어머니에게도 할 말은 다 한다. “반찬값이나 겨우 벌면서 유세”라는 시어머니에게 “그 반찬값으로 진욱 아빠 대학교 마쳤어요. 어머니 댁 생활비도 드리고요”라고 또박또박 대든다. “내 앞에서 잘난 척하면 안 된다”는 상사 강봉구(성준 분)에게는 “잘난 척할 만하니까 잘난 척하죠. 나보다 잘난 것도 없으면서 변호사랍시고 내 앞에서 깝치니까요”라고 대응한다. 남편과의 부적절한 관계에도 오히려 당당한 정나미(임세미 분)에게 날린 한마디는 “꿇어”였다. 여성 시청자들의 속을 뻥 뚫어주는 한마디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