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춘의 이슈프리즘] '그러나 정부'와 '그리고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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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hayoung@hankyung.com
‘그러나’와 ‘그런데’ ‘그리고’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접속사다. 이 일상적 접속사가 아주 특별하게 다가온 날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10일이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22분 동안 판결문을 낭독하면서 ‘그러나’와 ‘그런데’를 각각 네 번, ‘그리고’를 세 번 사용했다. 이 중 네 번 사용된 ‘그러나’는 반전에 반전을 가져왔다. 처음 세 번은 탄핵 기각 가능성을 높였다. 공무원 임면권 남용과 언론자유 침해,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서였다. 이 권한대행은 “문제 제기가 인정된다. 그러나 탄핵 사유는 아니다”고 명시했다.
네 번째 사용된 ‘그러나’는 정반대였다.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를 설립하게 하였다. 그러나 두 재단법인의 임직원 임면(중략) 등 운영에 관한 의사 결정은 피청구인과 최서원(최순실)이 하였고…”라며 탄핵 인용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정부'였던 박근혜 정부
이렇게 박 대통령은 파면됐다. 관심은 두 달 뒤 누가 대통령이 될지로 옮겨가고 있다. 대선후보들도 일자리, 복지 등에 대한 공약을 쏟아내며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공약을 실천할 여건은 좋지 않아 보인다.
당장 ‘촛불’에 대한 부채의식은 큰 반면 ‘태극기’에 대한 설득 방안은 모호하다. 탄핵 주역은 누가 뭐래도 촛불이다. 차기 정부도 촛불세력을 무시하기 힘들다. 자칫하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국내외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에게 끌려갈 수 있다. 여기에 반발을 계속하는 태극기세력을 품지 못한다면 국정기조조차 흔들릴 수 있다.
대통령이나 정부의 영(令)이 잘 통하지 않게 된 점도 변수다. 검찰과 특검, 헌재는 대통령의 장·차관 및 공무원 인사권까지 문제 삼았다. 업무 수첩은 물론 전화 녹음파일도 증거로 채택했다. 수사과정에서 실무 공무원들까지 드잡이했다. 앞으로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잘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툭하면 녹음하고, 메모한 뒤 폭로할 게 분명하다.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장·차관조차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그만두라고 해도 버틸 공산이 크다.
차기 정부는 '그리고 정부'가 될까
가장 큰 문제는 녹록지 않은 경제 환경이다. 임박한 미국 금리인상,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빚, 사상 최고의 청년 실업률, 고착화되는 2%대 성장률 등 그렇지 않아도 첩첩산중이다. 반면 대선주자들의 복지공약을 실현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기업들의 팔을 비틀기도 힘들어졌다. 헌재가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 경영의 자유권은 헌법에 보장돼 있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 후보의 공약대로 법인세 등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경제 주체들의 활력은 급속히 위축될 게 뻔하다.
이 권한대행의 표현을 확대해석하면 박근혜 정부는 ‘그러나 정부’였다. ‘문화융성, 경제부흥, 국민행복, 평화통일’이라는 4대 국정기조를 내세워 출범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렇다면 차기 정부는 어떨까. 주요 공약은 물론 ‘+α’까지 달성하는 ‘그리고 정부’가 될까, 아니면 임기 내내 갈팡질팡하다마는 ‘그러나 정부’가 될까. 대선후보의 능력을 일절 감안하지 않고 순전히 현재 여건만 따졌을 때 ‘그러나 정부’에 가까워 보인다면 지나친 비관일까.
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hayoung@hankyung.com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22분 동안 판결문을 낭독하면서 ‘그러나’와 ‘그런데’를 각각 네 번, ‘그리고’를 세 번 사용했다. 이 중 네 번 사용된 ‘그러나’는 반전에 반전을 가져왔다. 처음 세 번은 탄핵 기각 가능성을 높였다. 공무원 임면권 남용과 언론자유 침해,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서였다. 이 권한대행은 “문제 제기가 인정된다. 그러나 탄핵 사유는 아니다”고 명시했다.
네 번째 사용된 ‘그러나’는 정반대였다.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를 설립하게 하였다. 그러나 두 재단법인의 임직원 임면(중략) 등 운영에 관한 의사 결정은 피청구인과 최서원(최순실)이 하였고…”라며 탄핵 인용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정부'였던 박근혜 정부
이렇게 박 대통령은 파면됐다. 관심은 두 달 뒤 누가 대통령이 될지로 옮겨가고 있다. 대선후보들도 일자리, 복지 등에 대한 공약을 쏟아내며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공약을 실천할 여건은 좋지 않아 보인다.
당장 ‘촛불’에 대한 부채의식은 큰 반면 ‘태극기’에 대한 설득 방안은 모호하다. 탄핵 주역은 누가 뭐래도 촛불이다. 차기 정부도 촛불세력을 무시하기 힘들다. 자칫하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국내외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에게 끌려갈 수 있다. 여기에 반발을 계속하는 태극기세력을 품지 못한다면 국정기조조차 흔들릴 수 있다.
대통령이나 정부의 영(令)이 잘 통하지 않게 된 점도 변수다. 검찰과 특검, 헌재는 대통령의 장·차관 및 공무원 인사권까지 문제 삼았다. 업무 수첩은 물론 전화 녹음파일도 증거로 채택했다. 수사과정에서 실무 공무원들까지 드잡이했다. 앞으로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잘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툭하면 녹음하고, 메모한 뒤 폭로할 게 분명하다.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장·차관조차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그만두라고 해도 버틸 공산이 크다.
차기 정부는 '그리고 정부'가 될까
가장 큰 문제는 녹록지 않은 경제 환경이다. 임박한 미국 금리인상,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빚, 사상 최고의 청년 실업률, 고착화되는 2%대 성장률 등 그렇지 않아도 첩첩산중이다. 반면 대선주자들의 복지공약을 실현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기업들의 팔을 비틀기도 힘들어졌다. 헌재가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 경영의 자유권은 헌법에 보장돼 있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 후보의 공약대로 법인세 등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경제 주체들의 활력은 급속히 위축될 게 뻔하다.
이 권한대행의 표현을 확대해석하면 박근혜 정부는 ‘그러나 정부’였다. ‘문화융성, 경제부흥, 국민행복, 평화통일’이라는 4대 국정기조를 내세워 출범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렇다면 차기 정부는 어떨까. 주요 공약은 물론 ‘+α’까지 달성하는 ‘그리고 정부’가 될까, 아니면 임기 내내 갈팡질팡하다마는 ‘그러나 정부’가 될까. 대선후보의 능력을 일절 감안하지 않고 순전히 현재 여건만 따졌을 때 ‘그러나 정부’에 가까워 보인다면 지나친 비관일까.
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