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새 봄의 '보내미'
어린 시절 농촌에서는 한겨울을 농한기라고 불렀다. 가을에 추수를 끝낸 다음 눈이 내리기 전 땔감을 마련하면 봄까지는 하는 일도 크게 없었다. 따뜻한 방안에 앉아서 새끼를 꼬거나 멍석을 매는 일과 눈이 많이 내리면 동네로 나가는 길의 눈을 치우는 것 말고는 도시 할 일이 없었다. 마음이 저절로 풀어졌다.

어른들만 노는 것이 아니라 시골의 아이들도 풀어질 대로 풀어졌다. 아침 먹으면 점심 먹을 때까지 줄기차게 얼음판에 가서 놀거나 경사진 눈밭에 가서 썰매를 타고 논다. 아침부터 놀기 시작해 저녁에 해가 넘어가기 전 어른이 계시는 사랑방에 군불을 때는 것 말고는 도대체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봄이 되면 겨우내 일을 쉬었던 어른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헛간에 넣어두었던 지게를 꺼내 겨우내 외양간에서 나온 거름을 논밭으로 져내는 일이었다. 농한기가 끝나고 이제 또 한 해의 새 농사가 시작됐음을 그렇게 거름 짐을 져내는 것으로 다시 근면했던 날들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봄이 돼 새 학기가 되면 마음 자세가 달라진다. 새해가 됐을 때도 그러지만 새 학기가 되면 또 한 번 한 해 공부 계획을 세운다.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공부가, 어른들에게는 새로운 농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봄이 돼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고, 또 얼었던 땅이 풀리면 그동안 헛간에 보관해두었던 보습을 꺼내 지게에 얹고 소를 몰고 밭으로 나간다. 그렇다고 그날 씨앗을 뿌릴 밭의 정식 밭갈이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면서 긴긴날 외양간에서 쉬었던 소의 건강 상태도 점검하고 지난가을 헛간에 보관해두었던 쟁기가 헐거워지지 않았는지, 날은 무들지 않았는지 점검하고, 밭의 무름이나 해동 상태를 점검한다. 일테면 ‘시운전 밭갈이’를 해보는 것이다.

이것을 강원도 우리 고향에서는 ‘보내미’라고 불렀다.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다. 이것도 그냥 아무 날 아무렇게 막 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일진을 가려 좋은 날을 정해서(대개는 을축일이나 기축일과 같은 소의 날에) 새봄의 첫 보습을 대고 나가는 방향까지 남동간이든 서북간이든 방위를 가려서 했다. 또 보내미를 하는 날이면 일하는 사람 혼자 소를 끌고 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안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나가 밭가에 서서 바라보는 가운데에서 했다. 예전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가 농사를 짓는 일은 이렇게 땅에 기도하듯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농촌에서도 보내미를 할 일이 없어졌다. 예전에 소가 하던 일을 기계가 다 한다. 그러나 우리 일상에서 자기 자신을 ‘보내미’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남쪽에서 하루가 다르게 꽃소식이 들려온다. 학생들에게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어른들도 다시 한 번 생활의 기지개를 켤 시기이다. 논밭이 아니더라도 보내미를 하듯 앉은 자리에서 우리 자신을 점검해봐야 할 일은 많다. 건강도 점검해야 하고 컨디션도 조절해야 한다.

3월의 저 꽃잎 사이로 밝은 햇빛처럼 지나가는 시간은 이제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모두 저 봄처럼 우리 삶이 화사했으면 좋겠다. 마음이 먼저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몸도 따라 좋아진다고 한다. 이것 역시 새봄의 보내미 같은 마음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순원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