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트럼프 공격 타깃, 중국·일본 이어 독일로…"저평가 유로화로 미국 착취"
공격의 타깃이 바뀌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미국의 통상 압박과 환율 공세의 ‘예봉’이 일본과 중국을 거쳐 독일로 향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환율 조작을 하는 동안 미국은 바보처럼 당하기만 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시돋친 발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 간 전화 통화 이후 자취를 감췄다. 대신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을 앞세워 “독일이 극도로 저평가된 유로화를 앞세워 미국과 유럽을 착취하고 있다”고 공세를 편 뒤 미국은 독일에 대한 압박을 늦추지 않고 있다.

‘최대 흑자’ 부담스러운 獨

지난달 9일 독일 재무부는 “2016년 독일이 2523억유로(약 307조5300억원) 규모의 무역흑자를 거뒀다”고 발표했다. 전년도의 2443억유로 흑자를 훌쩍 뛰어넘으며 4년 연속으로 사상 최대 무역흑자 기록을 세웠다. 독일 Ifo경제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독일은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 지위도 차지했다.

하지만 독일 내에서 수출 호실적을 기뻐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칫 트럼프 대통령의 ‘눈엣가시’로 부각돼 통상 보복의 빌미만 줄 수 있다며 잔뜩 움츠린 분위기가 역력하다.

마르첼 프라처 독일경제연구소(DIW) 소장은 “사상 최대 무역흑자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 독일 간 마찰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라며 “독일이 수입보다 수출을 훨씬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은 자부심의 기반이라기보다는 근심의 근원”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미국은 독일의 무역흑자 규모를 확인한 뒤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나바로 위원장은 지난 6일 “독일의 무역흑자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14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미국 방문에 맞춰 양국 간 무역불균형을 논의하자”고 압박했다. 이에 독일 재무부는 이튿날 “무역정책은 EU가 관할할 영역”이라는 이유를 앞세워 미국 측 제안을 거절했다. 일본이나 중국과의 사례와 달리 미국은 독일에 대해선 ‘신경전’을 누그러뜨릴 기미를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다.

“中·日보다 독일이 더 위협적”

미국이 독일에 대해 유독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독일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미국 경제에 더 위협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불공정무역 주범으로 지탄받고 있지만 정작 공격의 화살은 독일을 향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피터슨국제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독일의 10대 수출품목 중 기계류와 전자부품 등 9개 품목이 미국의 10대 수출품목과 겹쳤다. 수출경합도가 주요 무역국 중에서 가장 높았다.

미국은 특히 저평가된 유로화에 주목한다. 독일이 싼값에 제품을 수출하며 과잉이득을 얻었다는 시각이다. 2012년 이후 달러화 대비 위안화 환율이 8.6% 저평가되는 동안 유로화는 16.6% 값이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각국 경제력을 고려할 때 유로화는 9~25%가량 저평가돼 있다. 모건스탠리는 독일의 경제력을 고려한 유로화 적정 환율은 유로당 1.5달러로 최근 환율(유로당 1.05달러)은 물론 유로존 전체 적정 환율 1.28달러에 비해서도 크게 저평가돼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시하는 제조업 경쟁력에서 독일이 탁월한 강점을 보이는 점도 미국이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제조업 일자리가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독일을 초반에 길들이지 못하면 통상공세가 일시적 효과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타워가 있는 뉴욕 5번가에서 벤츠 차량을 쉽게 볼 수 있는 반면 독일에선 제너럴모터스(GM)의 쉐보레를 거의 볼 수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미국 정부가 집계하는 무역 통계가 독일이 중국보다 위협적이라는 점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의 수출상품은 아시아를 비롯한 해외에서 수입한 부품을 많이 사용하는 반면 독일과 다른 주요 수출국은 독일산 부품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이 201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부가가치 기준으로 계산한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3분의 1이 줄고 독일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는 3분의 1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무역흑자는 수요·공급의 결과”

이 같은 미국의 인식에 대한 독일의 해명은 ‘원론적’이어서 미국을 설득하기엔 부족하다는 시각이 많다. 무역흑자는 인위적인 경제정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수요·공급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게 독일 측 반론이다. 독일 기업의 경쟁력이 뛰어나 무역흑자가 늘어났을 뿐이며 저평가된 유로화가 주요 산업에 미치는 효과도 분명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독일 기업 중 미국 시장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은 노르마그룹(기계), SAP·지멘스(IT), 뮌헨리·알리안츠(금융), 헨켈(소비재) 등으로 다양해 환율 효과를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독일은 또 유로화보다 엔화나 파운드화 등의 약세폭이 크다고 주장한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어느 누구도 독일이 환율을 조작해 무역흑자를 조성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며 “유로화 환율은 유럽중앙은행(ECB)이 결정한다”고 역설했다.

서독 경제가 급성장하던 1980년대에 레스터 서로 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세계경제전쟁(Head to Head)이란 저서에서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이 21세기 미국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미국은 플라자합의를 통해 달러화 강세를 인위적으로 꺾으며 마르크화를 앞세운 독일을 길들였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재개된 미국의 독일 견제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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