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 없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마이너스 정치'…결국 국회 탄핵 부메랑으로
67%의 높은 지지율로 출발한 박근혜 대통령(얼굴)이 탄핵으로 파면된 것은 타협과 양보 없는 독주정치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 분석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때부터 여야 대치로 시작했다. 취임 첫해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이 드러나자 야당은 특검을 요구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단칼에 거부했고 여의도와의 전쟁의 막이 올랐다. 그 후 채동욱 전 검찰총장 경질, 세월호특별법,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정윤회 문건파동 등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야당의 파상공세가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공세’라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 한·일 위안부협상 타결을 밀어붙이면서 야당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노동개혁법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각종 민생 및 개혁법안에 반대하는 야당을 겨냥해 ‘국회심판론’을 꺼내들었다. 국회를 협치(協治) 상대로 보지 않고 통치 대상으로만 여긴 제왕적 리더십에서 탈피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은 “적절한 결정”이란 평가가 나오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통이 부족해 논란을 키웠다”는 비판을 불렀다.

포용 없는 마이웨이식 정치에 국민들까지 염증을 느꼈다. 지난해 총선에서 공천권을 놓고 벌인 여당의 권력 암투가 결정적이었다. 총선 참패로 여소야대 정국이 들어섰지만 여당 분열은 봉합되지 않았다. 여당 의원들조차도 포용하지 못했다. 이른바 ‘배신자’들만 양산한 ‘박근혜식 마이너스 정치’가 결국엔 국회 탄핵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