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컨소시엄 요청 묵살…채권단 논의조차 안한 산업은행 이해 못해"
금호타이어 인수전이 법적 공방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금호타이어 주식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측이 매각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법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해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4일 공식 발표문을 통해 “금호타이어 매각과 관련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 측이 강경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 주주협의회와 맺은 우선매수권 약정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매각중지 가처분 소송을 이번주 제기할 방침이다.

“두 차례 요청에도 묵묵부답”

갈등이 커지는 것은 박 회장의 요청에 산업은행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라는 게 금호아시아나 측 설명이다. 박 회장은 지난 2일과 6일 두 차례에 걸쳐 우선매수권 일부를 양도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채권단에 보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측에선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은 채 우선협상대상자인 더블스타와 13일 주식매매계약을 맺었다. 금호아시아나 측이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컨소시엄을 허용하지 않으면 금호타이어 인수를 포기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김세영 금호아시아나 경영전략실 상무는 “주주협의회 안건으로 올려 컨소시엄을 불허한다는 결론이 났다면 이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주주협의회 안건으로 부의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산업은행이 아직 회사에 공식 답변을 전달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지금까지 한 번도 당사자인 금호아시아나에 컨소시엄 허용에 대한 공식 통지를 하지 않았다”며 “언론에만 입장을 밝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채권단 “원칙 고수하겠다”

산업은행은 주주협의회에 안건을 올리는 게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원칙상 박 회장의 우선매수권은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미 매각 절차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황에서 원칙을 바꾸기는 어렵다”며 “애초부터 컨소시엄을 허용해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안건이 부의되더라도 산업은행은 반대했을 거고 결국은 부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앞으로도 박 회장의 컨소시엄 허용 안건을 주주협의회에 올릴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다. 채권단이 당초 우선매수권을 개인 자격으로 한정한 것은 과거 금호아시아나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했다가 자금난에 빠져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전례가 있어서다. 또 인수 자금 없이 외부에서 빌린 돈으로 지분을 취득하는 사익 편취를 막으려는 조치라고 채권단은 설명했다.

중국 기업에 넘어갈 수도

더블스타는 14일 채권단에 금호타이어 인수대금(9549억8100만원)의 10%인 954억9810만원을 입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날 채권단과 금호타이어 주식 42.01%에 대한 인수계약을 맺은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채권단은 이날 오후 박 회장에게 우선매수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통보하기도 했다. 우선매수권을 가진 박 회장이 더블스타가 계약한 9549억8100만원과 같은 금액으로 인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 금호타이어는 박 회장이 인수하게 된다. 박 회장이 우선매수권 행사기한 내 인수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더블스타가 인수하게 된다. 우선매수권 행사기한은 통보일로부터 30일이다.

채권단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 금호타이어는 더블스타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컨소시엄 허용이 안 된다면 인수를 포기하겠다”는 게 박 회장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더블스타 규모나 인지도가 금호타이어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회사 장기 발전에 도움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세계 타이어시장에서 금호타이어는 14위(2015년 기준), 더블스타는 34위다. 연매출도 금호타이어는 2조9476억원(2016년), 더블스타는 5129억원(2015년)으로 6배가량 차이난다.

또 최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중국 정부가 한국 기업에 무차별 보복을 하는 상황에서 국내 대표적인 타이어 업체를 중국 회사에 넘기는 게 최선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지은/김일규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