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브라질·러시아 등 신흥국 차 수요 '꿈틀'…미국 보호주의는 부담
자동차산업은 세계적인 수요 부진과 주요 자동차 판매사의 공급 경쟁으로 올해에도 어려운 한 해가 지속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시작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나타난 것도 완성차 업체엔 큰 부담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2011년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 종목의 주가 상승기)’ 이후 글로벌 점유율 5%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외환경의 부담을 돌파하기 위한 묘수가 필요하다. 희망도 보인다. 신흥국 경기가 점차 살아날 기미를 보이는 데다 차종 다변화 전략이 실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흥국 점유율 높은 현대차 수혜

세계 신차 수요는 지난해보다 1.9% 늘어나는데 그칠 전망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환경에서 늘어난 미국의 자동차 수요가 조금씩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자동차 판매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세금 혜택으로 신차 수요를 앞당긴 중국과 한국도 올해 혜택이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전반적으로 자동차 소비 대국의 수요가 부진한 상황이다.

반면 그동안 국제 유가 하락 등으로 수요가 부진했던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국들은 유가 상승에 힘입어 소비 심리가 개선되고 있다. 지난 3년간 글로벌 수요를 견인했던 선진국의 소비 감소폭을 신흥국이 메워주고 있는 모습이다. 자동차산업 성장의 축이 신흥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신흥국의 회복폭이 선진국의 둔화폭을 상쇄할지는 미지수지만 이 같은 변화 자체가 중요하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신흥국 중심의 투자를 선행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주요 신흥국인 인도, 브라질, 러시아에서 각각 시장 점유율 2위, 5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공격적인 현지 진출과 판매망 확충을 지속한 결과다.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한 전략이 빛을 볼 수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 중 신흥국 비중이 가장 큰 만큼 올해 신흥국 수요 반등의 수혜를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 성공 원년 될까

두 번째 요인은 신차 출시 전략의 변화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글로벌 성적이 부진했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유행에 맞지 않은 신차 출시로 인한 제품 경쟁력 부족이다. 스포츠유틸리티(SUV) 차종에 대한 인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업체들은 기존의 차종이었던 준중형과 중형 차종의 신차 출시에 집중했고 과거와 같은 신차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아반떼와 쏘나타로 이어지는 모델 라인업과 K3, K5 라인업 역시 시장 기대치보다 부진했던 이유다. 이 차급의 수요는 준중형급 SUV에 흡수됐다.

기존 모델과 비교했을 때 신선함을 주지 못했던 점도 부진의 큰 원인이다. 럭셔리 완성차 업체들은 공격적인 엔트리 차종 출시로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다. 디자인과 성능이 소폭 개선된 정도로는 입맛을 맞출 수 없다.

이 같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현대차그룹도 질적 성장을 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제네시스 브랜드 출시를 통해 럭셔리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도요타의 렉서스 시리즈 등과 경쟁을 준비하고 있다. G80, G90으로 이어지는 신차 출시가 그 결과다. 기아자동차도 프리미엄 스포츠 세단인 스팅어를 조만간 출시할 예정이다. 올해는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전사적인 역량을 끌어올리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글로벌 업체 대비 40% 이상 저평가”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성공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은 기술들을 기존 모델에 장착할 예정이다. 안전성과 관련된 스마트센서, 고급스러운 주행 감각 등을 일반 차종에도 적용한다는 예정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신형 그랜저(IG)의 경우 이 같은 전략의 효시가 됐다. 젊고 역동적인 변화를 바탕으로 높은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월 1만대가 넘는 판매량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올해 4월 출시될 쏘나타 페이스리프트 모델도 그랜저의 성공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임에도 대대적인 디자인 변경과 고급 기능을 채택했다.

주가도 아직은 저평가됐다는 분석이 많다. 글로벌 완성차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살펴보면 현대차의 PBR은 0.57배, 기아차는 0.54배 수준이다. 반면 일본 도요타는 1.09배,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 1.12배, 포드 1.46배를 기록 중이다. 판매량 기준 글로벌 상위 8개 업체의 평균 PBR보다 현대차는 43%, 기아차는 46% 저평가돼 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자동차 업계를 둘러싼 전망은 밝지 않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긍정적인 변화들이 시작되고 있다. 신흥국 경기가 본격적인 반등에 진입하고 상품성이 개선된 모델이 출시될 시점인 2분기부터는 한국 완성차에 대한 인식이 나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정용진 < 신한금융투자 책임연구원 yjjung86@shinh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