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원어로 즐기는 뮤지컬의 또 다른 매력
오랜만에 외국 배우들이 직접 출연하는 뮤지컬 한 편이 막을 올렸다. ‘지킬 앤 하이드’의 월드투어 공연이다. 원어로 즐기는 재미가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라는 제목이 더 익숙한 사람도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보다 변형된 캐릭터들, 영화 ‘반지의 제왕’의 골룸이나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헐크쯤으로 더 친근할 수도 있다. 인간의 내면엔 다양한 자아가 존재하고 선과 악이 분리된다면 얼마나 극과 극의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극적 인물의 시조 격인 존재다.

원작은 소설이다. 원제목은 조금 더 긴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에 대한 이상한 보고서’였다. ‘보물섬’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태생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1886년 발표했는데 그는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작가였다. 일설에 의하면 병약했던 작가 스스로가 환각제를 먹고 이 소설을 썼다는 후문도 있다. 소설 집필 당시 그는 인근의 병원으로부터 ‘맥각’이라 불리던 버섯류로 환각제 치료를 받았던 기록이 있기 때문인데, 사실 여부를 떠나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인격분리의 생생한 기록이 사실은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추론이 일반적이다.

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이면에는 시대적 배경도 있다. 인간 정신세계나 정신 분열증, 특히 한 사람의 내면에 여러 다양한 인격이 공존할 수 있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처음 제시돼 세간에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소설 인기는 아예 영미권에서 ‘지킬과 하이드’라는 제목 자체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내면의 상이한 자아에 대한 관용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출판 첫해에 4만부나 판매되는,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흥행기록을 낳았고 10여년 동안 25만부나 팔려나가 스티븐슨이 집필한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뮤지컬로 처음 선을 보인 것은 1997년 미국 브로드웨이의 플리머스 극장에서였다. 스키드 로의 리드 싱어였던 세바스티안 바흐나 인간과 대화하는 자동차가 등장하는 TV 시리즈 ‘나이트 라이더’ 혹은 비키니 차림의 늘씬한 미녀들이 나왔던 ‘베이워치’로 익숙한 미국 탤런트 데이비드 하셀호프가 무대를 꾸며 인기를 누렸다. 우리나라에선 조승우를 빼놓고 말하기 힘들다. 2004년 국제회의장을 개조한 공연장이었던 코엑스 오디토리엄에서 막을 올렸는데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요즘은 흔해진 배우의 성을 따 뮤지컬 캐릭터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처음 등장했던 것도 바로 ‘조지킬’ 인기가 시발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의 인기는 일본 진출로까지 이어져 뮤지컬 한류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간혹 오리지널 뮤지컬이라는 용어도 쓰지만 잘못된 표현이다. 무대에서 오리지널이란 초연배우들이 등장하는 오리지널 캐스트 무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투어 프로덕션이 맞다. 예전에는 대도시에서 관객을 불러모으던 대형 뮤지컬들이 요즘엔 무대 기술의 진화와 세트의 경량화, 이동의 간편화 등에 힘입어 관객을 찾아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생겨난 이름이다. 굳이 비싼 비행기 삯을 들이지 않고도 현지 무대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큰 매력이다. 자막을 보지 않고 즐기도록 약간의 예습을 더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봄기운 가득한 공연장에서 멋진 뮤지컬을 만끽해보기 바란다.

원종원 <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