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튤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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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튤립에는 의외로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네덜란드 꽃으로 워낙 유명하지만 원산지는 터키다. 중앙아시아 톈산산맥에서 자라던 야생화를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터키 사람들이 재배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름은 랄레(Lale)였다. 생김새가 터번과 닮았다 해서 머릿수건을 뜻하는 터키어 튈벤트(Tulbent)로 불리다가 튤립(Tulip)이 됐다. 18세기 오스만 튀르크 전성기를 ‘튤립의 시대(랄레 데브리·Lale Devri)’라고 부르는 것도 이때문이다. 튤립은 터키의 국화다.
16세기 유럽으로 전해진 튤립은 네덜란드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름답고 이국적인 이 꽃에 매료됐다. 수요가 급증하자 가격이 치솟았고 품귀현상이 벌어졌다. 꽃이 피기 전까지는 어떤 색깔인지를 알 수 없어서 구근을 로또식으로 사재기하기에 바빴다. 1624년에는 가장 귀한 ‘황제 튤립’이 암스테르담의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상황이 됐다. 구근이 생기기도 전에 어음으로 거래하는 선물시장이 생기자 숙련 노동자 최고 연봉의 10배까지 뛰었다. 그러나 1637년 값이 곤두박질치면서 파국이 왔다. ‘튤립 투기’의 비극이었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영국에 경제대국 지위를 넘겨주게 됐다. 튤립 파동은 거대한 거품 경제를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튤립은 역사상 최초의 투기 상품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중국 당나라 때의 ‘모란 광풍’에 비하면 훨씬 나중 일이다. 부를 상징하는 모란이 귀족들의 사랑을 받자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모란 가격이 집 한 채 값을 훌쩍 뛰어넘었다니 튤립 파동과 빼닮았다. 시인 백거이가 ‘진중(秦中)에서 읊다’는 시에서 ‘한 포기 꽃이 중농 열 집의 세금’이라고 했고, 시인 노륜은 ‘장안의 10만가구가 파산했다’고 할 정도였다.
튤립이 네덜란드에 불행만 안긴 건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품종 개량 덕분에 지금은 수출품 1위로 자리 잡았다. 암스테르담 근교에서 열리는 ‘유럽의 봄’ 축제에는 해마다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린다. 터키도 만만치 않다. 터키 문화관광부는 오는 4월 1~30일 이스탄불 튤립 축제에서 3000만 송이로 도시 전체를 장식하겠다고 발표했다. 두 나라의 튤립 대결은 해가 갈수록 치열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4~5월에 충남 태안과 전남 신안, 경남 남해 장평·미조 등에서 화려한 튤립 축제가 열린다. 에버랜드 튤립 축제는 어제 이미 시작됐다. 아이들 손 잡고 탐스러운 튤립을 감상하러 봄 나들이에 나서 보자.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16세기 유럽으로 전해진 튤립은 네덜란드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름답고 이국적인 이 꽃에 매료됐다. 수요가 급증하자 가격이 치솟았고 품귀현상이 벌어졌다. 꽃이 피기 전까지는 어떤 색깔인지를 알 수 없어서 구근을 로또식으로 사재기하기에 바빴다. 1624년에는 가장 귀한 ‘황제 튤립’이 암스테르담의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상황이 됐다. 구근이 생기기도 전에 어음으로 거래하는 선물시장이 생기자 숙련 노동자 최고 연봉의 10배까지 뛰었다. 그러나 1637년 값이 곤두박질치면서 파국이 왔다. ‘튤립 투기’의 비극이었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영국에 경제대국 지위를 넘겨주게 됐다. 튤립 파동은 거대한 거품 경제를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튤립은 역사상 최초의 투기 상품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중국 당나라 때의 ‘모란 광풍’에 비하면 훨씬 나중 일이다. 부를 상징하는 모란이 귀족들의 사랑을 받자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모란 가격이 집 한 채 값을 훌쩍 뛰어넘었다니 튤립 파동과 빼닮았다. 시인 백거이가 ‘진중(秦中)에서 읊다’는 시에서 ‘한 포기 꽃이 중농 열 집의 세금’이라고 했고, 시인 노륜은 ‘장안의 10만가구가 파산했다’고 할 정도였다.
튤립이 네덜란드에 불행만 안긴 건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품종 개량 덕분에 지금은 수출품 1위로 자리 잡았다. 암스테르담 근교에서 열리는 ‘유럽의 봄’ 축제에는 해마다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린다. 터키도 만만치 않다. 터키 문화관광부는 오는 4월 1~30일 이스탄불 튤립 축제에서 3000만 송이로 도시 전체를 장식하겠다고 발표했다. 두 나라의 튤립 대결은 해가 갈수록 치열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4~5월에 충남 태안과 전남 신안, 경남 남해 장평·미조 등에서 화려한 튤립 축제가 열린다. 에버랜드 튤립 축제는 어제 이미 시작됐다. 아이들 손 잡고 탐스러운 튤립을 감상하러 봄 나들이에 나서 보자.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