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NATO 방위비 분담 등 모든 사안마다 뚜렷한 의견차
트럼프 "독일과 양자무역협상" 주장
메르켈 "EU, 단일국가로 봐야"
시종일관 뾰로통한 트럼프, 메르켈 악수 요청에도 '묵묵부답'
◆무역협정부터 NATO까지 의견차
지난 17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두 정상 간 회담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남성 지도자와 여성 지도자의 첫 만남으로 관심을 모았다. 예상대로 두 정상은 통상과 안보, 이민 등 모든 의제에서 뚜렷한 의견차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미무역에서 막대한 규모의 흑자를 내고 있는 독일을 겨냥해 메르켈 총리에게 호혜적이고 공정한 무역을 촉구했다. 그는 “미국은 수년간 많은 나라에서 아주 불공정하게 대접받았다”며 “이제 그것은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고립주의자가 아니라 자유무역주의자, 공정무역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독일과의 양자협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반격에 나섰다. 한국과 EU 간 FTA의 성공사례를 언급하며 미·EU 간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재개를 요구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가장 최근에 체결(2011년)해 발효(2012년)한 한국과의 FTA를 비롯해 우리가 한 모든 무역협정이 우리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가져다줬다”고 맞받았다.
메르켈 총리는 “한·EU FTA로 인해 자동차산업 등에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결과는 양쪽 모두에 이익(win-win)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과 EU 간 협상은 양자회담”이라며 EU를 단일국가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양자협상이 아니라며 시각차를 보였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해서도 두 정상은 대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를 강력히 지지하지만 유럽이 방위비의 공정한 몫을 낼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미국에 매우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은 국내총생산(GDP)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하도록 하는 나토의 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대응했다.
◆악수도, 눈길 교환도 외면
이날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시작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회담 직전 취재진이 백악관 내 집무실에서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악수 장면을 요청했다. 메르켈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쳐다보며 “악수하실래요?” 하고 물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무런 말 없이 얼굴을 찌푸리고 손끝을 모은 채 정면을 바라봤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형식적인 악수조차 거부함으로써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미·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손을 끌어당겨 세차게 흔들면서 19초간 놓아주지 않았다. 이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메이 총리의 손을 잡았다.
두 정상의 어색한 분위기는 기자회견장에서도 풀리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정부의 도청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자 “도청에 관해서는 나와 메르켈 총리는 공통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메르켈 총리의 전화를 감청했다는 전 중앙정보국(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를 상기하며 내놓은 경솔한 농담이었다. 메르켈 총리는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면서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기자회견에서는 메르켈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끈질긴 눈빛 교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