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레이건의 열한 번째 계명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열한 번째 계명’이라는 게 있다. 1966년 캘리포니아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레이건은 “너의 동지 공화당원을 욕하지 말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레이건이 이 구호를 꺼낸 것은 2년 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때의 교훈 때문이다. 배리 골드워터와 넬슨 록펠러가 맞붙은 경선은 악명 높은 네거티브 캠페인이 등장하면서 진흙탕 싸움이 됐다. 골드워터는 경선에서 승리했지만 본선에서 린든 존슨 민주당 후보에게 참패했다. 경선 네거티브전에서 부각된 부정적 이미지가 발목을 잡았다.
레이건의 구호는 경선 네거티브는 본선 경쟁력을 갉아먹는 만큼 삼가자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의 ‘십계’와 연계해 ‘그만큼 무겁게 받아들여 달라’는 뜻에서 열한 번째 계명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후 미국 대선 경선과 본선 토론회에서 난타전이 벌어질 때 “레이건의 열한 번째 계명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나오고는 했다. 물론 미국에서도 모두 이 계명을 따른 것은 아니다.
맹탕, 재탕, 앵무새 토론회
한국은 어떤가. 5월 대선을 앞두고 각 당 경선 토론회가 연일 열리고 있다. 네거티브전으로 따지자면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나의 장점과 국가 운영 리더십을 보여주기보다 상대 공격에 주력하고 있다. 능력 검증은 뒷전이다. 그러다 보니 변별력이 떨어져 대통령 자격 입증은 어렵다. 맹탕, 재탕, 앵무새 토론회라는 비아냥이 들려온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21일 벌인 민주당 6차 토론회는 가관이었다. 싸우지 말자는 제안이 또 다른 싸움의 빌미가 됐다. 문 전 대표는 “안 지사 주변에 네거티브에 몰두하는 분이 있다. 네거티브를 하면 자신부터 더럽혀진다”고 공격했다. 안 지사는 “문 후보를 돕는 분들이 네거티브를 엄청 한다”고 날을 세웠다.
너의 허물만 보이고…
두 주자는 문 전 대표의 ‘전두환 표창 발언’ 등을 두고 지루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22일에도 이전투구는 이어졌다. 안 지사는 문 전 대표를 겨냥해 “자신들의 발언은 정책 비판, 타인의 비판은 네거티브인가. 문 후보는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드는지 아는가”라고 했다. 문 전 대표는 “동지는 동지”라며 네거티브를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토론회도 사정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경선전은 치열해야 한다. 검증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 남의 허물만 들춰내는 데 주력하는 것은 곤란하다. 더군다나 5월9일 대선이 끝나자마자 대통령은 취임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과정 없이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만큼 정책은 정교해야 한다. 토론회가 제대로 된 정책 검증의 기회가 돼야 하는 이유다.
17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가운데 안 지사를 제외하고 비호감이 호감보다 많았다. 유권자의 정치 혐오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이 자초했다. 제 눈에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탓하는 식의 토론회가 정치 혐오를 키우는 데 크게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문 전 대표의 ‘동지는 동지’ 발언은 레이건의 열한 번째 계명을 연상케 한다. 문 전 대표는 과연 네거티브 자제 발언을 지킬 것인가. 이 말을 한 이후에도 양측의 네거티브전은 멈추지 않고 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레이건의 구호는 경선 네거티브는 본선 경쟁력을 갉아먹는 만큼 삼가자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의 ‘십계’와 연계해 ‘그만큼 무겁게 받아들여 달라’는 뜻에서 열한 번째 계명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후 미국 대선 경선과 본선 토론회에서 난타전이 벌어질 때 “레이건의 열한 번째 계명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나오고는 했다. 물론 미국에서도 모두 이 계명을 따른 것은 아니다.
맹탕, 재탕, 앵무새 토론회
한국은 어떤가. 5월 대선을 앞두고 각 당 경선 토론회가 연일 열리고 있다. 네거티브전으로 따지자면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나의 장점과 국가 운영 리더십을 보여주기보다 상대 공격에 주력하고 있다. 능력 검증은 뒷전이다. 그러다 보니 변별력이 떨어져 대통령 자격 입증은 어렵다. 맹탕, 재탕, 앵무새 토론회라는 비아냥이 들려온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21일 벌인 민주당 6차 토론회는 가관이었다. 싸우지 말자는 제안이 또 다른 싸움의 빌미가 됐다. 문 전 대표는 “안 지사 주변에 네거티브에 몰두하는 분이 있다. 네거티브를 하면 자신부터 더럽혀진다”고 공격했다. 안 지사는 “문 후보를 돕는 분들이 네거티브를 엄청 한다”고 날을 세웠다.
너의 허물만 보이고…
두 주자는 문 전 대표의 ‘전두환 표창 발언’ 등을 두고 지루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22일에도 이전투구는 이어졌다. 안 지사는 문 전 대표를 겨냥해 “자신들의 발언은 정책 비판, 타인의 비판은 네거티브인가. 문 후보는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드는지 아는가”라고 했다. 문 전 대표는 “동지는 동지”라며 네거티브를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토론회도 사정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경선전은 치열해야 한다. 검증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 남의 허물만 들춰내는 데 주력하는 것은 곤란하다. 더군다나 5월9일 대선이 끝나자마자 대통령은 취임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과정 없이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만큼 정책은 정교해야 한다. 토론회가 제대로 된 정책 검증의 기회가 돼야 하는 이유다.
17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가운데 안 지사를 제외하고 비호감이 호감보다 많았다. 유권자의 정치 혐오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이 자초했다. 제 눈에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탓하는 식의 토론회가 정치 혐오를 키우는 데 크게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문 전 대표의 ‘동지는 동지’ 발언은 레이건의 열한 번째 계명을 연상케 한다. 문 전 대표는 과연 네거티브 자제 발언을 지킬 것인가. 이 말을 한 이후에도 양측의 네거티브전은 멈추지 않고 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