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투자증권에 입사한 KLPGA투어 출신 골퍼 정혜진(왼쪽)과 김진주.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NH투자증권에 입사한 KLPGA투어 출신 골퍼 정혜진(왼쪽)과 김진주.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미녀 골퍼’ 정혜진(30)은 지난주부터 필드가 아니라 서울 여의도로 출근하고 있다. 2012년 롯데칸타타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상금 랭킹 10위권까지 오른 그는 올해 NH투자증권 경영지원본부에 정직원으로 입사했다. 호칭도 ‘정 프로’에서 ‘정 대리’로 바뀌었다. 그의 표정은 여느 신입사원들처럼 설렘으로 가득했다. “처음 회사 생활을 해봐서 그런지 모든 것이 새로워요. 동료 직원들과 함께 점심 먹고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떠는 것도 정말 즐겁습니다. 여의도에 벚꽃이 피면 꽃놀이도 가기로 했어요.”

동료 선수 부러움 한몸에

'골프채' 대신 '투자책' 잡은 KLPGA 출신 미녀 골퍼들
필드를 떠나 증권가로 향하는 여자 프로골퍼가 늘고 있다. 김진주 대리(29)는 정혜진 대리에 앞서 2013년 NH투자증권에 자리를 잡았고 이심비 대리(27)와 이다솜 대리(28)는 각각 2013년과 2014년부터 미래에셋대우 경영인프라지원본부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2005년 KLPGA 투어 메리츠금융클래식 우승자 최우리 대리(32)는 2011년 이후 HMC투자증권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다.

프로 생활을 접으면 레슨 프로로 전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들은 증권회사에 입사해 우수 고객(VIP)들을 대상으로 레슨과 라운딩 등을 하면서 증권사 직원이 해야 할 본연의 업무도 병행한다. 회사 실적에 대한 기여도도 높은 편이다. 김 대리는 “지점의 VIP 고객들이 라운딩 후 기분이 좋아 자금을 추가로 예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고객들과 공통의 화제를 만들기 위해 주식 투자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액 자산가 중에는 ‘숨은 고수’도 많다는 후문이 다. 김 대리는 “설렁설렁 치다가 깜짝 놀라 긴장하고 칠 때도 많다”고 말했다.

프로골퍼를 채용해 VIP 마케팅에 활용하는 서비스는 2009년 KDB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이 가장 먼저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수들의 반응이 시큰둥했지만 지금은 프로선수 간 경쟁률이 수십 대 1까지 치솟을 정도로 인기 직종이 됐다. 일반 직원처럼 서류전형은 물론 치열한 면접 경쟁을 통과해야 사원증을 목에 걸 수 있다. 연봉이 KLPGA 1부 투어 상금 랭킹으로 따지면 50위권(8000만~1억원)에 해당할 정도로 높고, 늘 성적에 압박받는 현역 선수들과 달리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골퍼 채용한 VIP 마케팅

골프선수 출신이지만 어디까지나 본업은 ‘증권맨’이다. 정 대리는 요즘 투자 관련 책을 잡고 ‘열공’ 중이다. 펀드투자상담사 자격증을 따 라운딩 도중에도 기본적인 투자 상담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골프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승부욕과 집중력이 남다르다”고 귀띔했다.

프로선수 생활을 일찍 끝낸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정 대리와 이심비 대리는 국가대표 상비군 생활까지 했다. 특히 이 대리는 아마추어 시절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유소연(27·메디힐), 안신애(27·문영그룹) 등과 우승을 휩쓸며 라이벌 구도를 이룰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2009년 1부 투어에 합류하자마자 드라이버 입스(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해하는 증세)가 찾아왔고, 결국 심리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프로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필드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증권업계에서 펼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 만족하고 있어요.”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