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팀이 지난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로비에 마련된 ‘팝업 스테이지’에서 오는 6월 공연할 ‘3 볼레로’의 일부를 시연하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팀이 지난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로비에 마련된 ‘팝업 스테이지’에서 오는 6월 공연할 ‘3 볼레로’의 일부를 시연하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지난 25일 오후 3시55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국립현대무용단의 ‘혼합’ 공연이 끝난 뒤 극장을 나서는 이들로 붐비는 로비 한쪽에 또 다른 무대가 펼쳐졌다. 현대무용가 김설진을 비롯한 무용수 5명이 가로, 세로 3m씩의 간이 무대에 올랐다. 휘파람을 불며 무대를 돌던 이들은 라벨의 ‘볼레로’ 선율이 나오자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극장을 나서던 관객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하나둘 발길을 멈췄다. 어느새 로비엔 무대를 중심으로 겹겹이 둘러선 관객들로 커다란 원이 그려졌다.

이날 무대는 국립현대무용단의 다음 공연 일부를 미리 보여주는 ‘팝업 스테이지’였다. 오는 6월 초 선보이는 공연 ‘3 볼레로’의 창작·출연진이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무용 버스킹에 나섰다. 이들은 세 팀으로 나눠 5분여씩 춤을 추며 신작 일부를 보여줬다.

정식 무대가 아니라 좁은 공간에서 열린 시연이어서 작품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무용수들도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는 동작을 주로 선보였다. 하지만 공연의 주요 동작이나 조형성을 엿보기엔 충분했다.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솔리스트 출신인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는 선글라스를 낀 채 무용수 7명과 함께 세 번째 무대에 섰다. 발레의 가벼운 기본동작이 반복되는 선율을 따라 점점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변했다. 춤이 끝나자 관객 사이에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사람도 많았다.

팝업 스테이지는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 신임 예술감독이 올초 기획회의에서 낸 아이디어다. 발레나 클래식음악엔 잘 알려진 고전 레퍼토리가 많은데 현대무용은 창작 초연작이 많아 관객들이 관람할지 말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 착안했다. 다음 공연에 참여하는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차기작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핵심 장면 3~4분 분량을 뽑았다. 여기에 관객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장면을 더해 간이 무대를 준비했다. 팝업 스테이지는 연말까지 계속 열 계획이다.

일각에선 국내 무용계에서 손꼽히는 스타들을 복도 한쪽에서 춤추게 해도 되느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즐겁게 무대를 준비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 교수는 “춤은 직접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홍보 방법”이라며 “특히 현대무용은 주제나 몸짓이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경우가 많아 홍보 문구만으로는 무대를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두 번째 무대에 오른 김보람 안무가는 “창작 과정이 공개돼 관객들이 기대와 호기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설진 안무가는 “‘혼합’을 보고 현대무용에 관심을 두는 관객이 늘어나 ‘3 볼레로’도 많이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팝업 스테이지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무용단은 24~26일 ‘혼합’ 공연 직후 계속 팝업 스테이지를 열었다. 25일엔 페이스북 동영상으로 생중계도 했다. 무용계와 관객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팝업 스테이지가 끝난 뒤 “저 공연을 보고 싶다”며 스마트폰으로 다음 공연 일정을 검색하는 관객도 여럿이었다. 이지현 무용평론가는 “현대무용 대중화를 위해 정식 무대를 고집하지 않은 혁신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