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어떡하지,
이 봄을 아리게
살아버리려면?
신나게 웃는 거야, 라일락
내 생애의 봄날 다정의 얼굴로
날 속인 모든 바람을 향해
신나게 웃으면서 몰락하는 거야
스크랩북 안에 든 오래된 사진이
정말 죽어버리는 것에 대해서
웃어버리는 거야, 라일락,
아주 웃어버리는 거야
공중에서는 향기의 나비들이 와서
더운 숨을 내쉬던 시간처럼 웃네
라일락, 웃다가 지네
나의 라일락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 中
T S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노래했습니다.
라일락 꽃이 피는 4월이 오면, 지난겨울의 어둑했던 기억은 잊어버리고 그냥 웃어보고 싶습니다. 삶은 우리를 속이지만 아픔과 몰락을 긍정의 힘으로 바꿔버리고, 라일락 꽃처럼 피어나 아린 생애의 봄날을 신나게 웃어버리고 싶습니다. 피었다가 금세 지는 봄날에는 살아내야 하는 고통의 삶이 있어 잔인하기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버린다면 웃음이 우리를 나비처럼 가볍게 다시 살게 하지 않겠어요.
김민율 < 시인(2015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