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세관원을 꿈꾼 랭보
해체와 파괴의 시세계를 선보여 초현실주의와 현대시에 막대한 영향을 준 프랑스의 천재시인 아르튀르 랭보. 17세 나이에 등단해 19세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쓴 시로 프랑스 상징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남아 있다.

산문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출간한 이후 문학의 열정이 식은 랭보는 37세의 짧은 삶을 마감할 때까지 서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를 방랑하며 무역업자와 군인, 탐험가 등으로 활약한다. 이에 대해 후세는 ‘천재시인다운 방랑’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무역업자라는 간판 뒤에 숨은 그의 실상은 밀수업자였다. 랭보의 밀수 근거지는 지금의 아프리카 소말리아. 랭보는 영국산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상단을 꾸렸는데, 낙타에 실린 것은 에티오피아의 반군에 팔 무기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 등장하는 밀수 사례는 부지기수지만 성공하면 큰돈을 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도 금괴 1㎏을 밀수하면 약 200만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같은 중량의 마약은 대략 20배의 범죄이익을 얻는다. 농산물이나 가짜 상품도 비슷한 규모의 수익이 남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을 보면 1950년대에는 나일론 옷감과 화장품, 재봉틀이 주로 밀수됐다. 1960년대에는 텔레비전과 만년필, 라디오, 커피 등이 밀수품 목록에 올랐다. 1970년대에는 금괴와 컬러TV, 1980년대에는 일제 면도기와 카메라, 코끼리 밥통이 많았다. 1990년대부터는 골프용품과 양주 등이 인기를 끌다가 2000년대 이후부터 중국산 고추와 참깨 등 농산물이 주된 밀수품목이었다. 최근에는 가짜상품과 의약품의 적발이 늘었다.

밀수 수법도 진화한다. 이삿짐 가구 속에 밀수품을 숨겨오거나 금괴를 녹여 가방 바퀴나 옷걸이로 만들어 들여온다. 마약을 술에 녹여 밀수하고, 과일이나 생선 속에 숨겨 오기도 한다. 심지어 몸속에 숨겨오는 일도 있다.

세관원들도 ‘밀수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다른 나라의 세관과 최신 밀수수법 등 정보를 공유하고, 컨테이너 엑스레이 검색기 등 첨단장비를 활용한다. 명절이나 휴가철 등 특정 시기에 맞춰 관련 품목을 집중 단속하기도 한다.

밀수꾼이던 시인 랭보는 아이러니하게도 세관원이 되기를 무척 희망했다고 한다. 세관에 취직하지 못한 그는 세관원에 대한 엄청난 반감을 갖게 됐고 결국 밀수에 손을 댔는지도 모른다. 문득 랭보가 세관원이 됐더라면 어떤 시세계를 펼쳤을까 하는 궁금증이 남는다.

천홍욱 < 관세청장 chunhu@customs.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