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본질과 혁신의 영역
아날로그 필름시장의 강자였던 코닥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다. 그러나 필름시장 보호를 위해 이를 상용화하지 않았고, 결국 시장에서 밀려났다. 코닥이 판단의 기본가치를 ‘수익구조 보호’에 두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미지 재현’이라는 본질적 가치에 집중했다면 코닥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조직의 본질이 되는 기본 영역과 새로운 기술을 수용해야 할 혁신 영역을 구분하고, 혁신의 영역에서 한계 없는 파괴적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려의 목소리도 커진다.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아마존닷컴이 작년 말 출범시킨 무인상점 아마존 고(Go)는 이런 전망을 현실로 옮겨놓았다. 급격한 기술 환경의 변화는 조바심을 일으킨다. 조바심은 때로 우리가 반드시 고수해야 할 핵심적 가치가 무엇인지 잊게 한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자. 여전히 3차 산업혁명은 진행 중이다. 3차 산업혁명은 1차 산업혁명과 2차 산업혁명의 성과와 단절돼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공장 자동화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우려했지만, 그것은 당시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유효한 걱정이었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올수록 지금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직업과 삶의 방식들이 생겨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여전히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수많은 상품을 소비하며 살아갈 것이다. 전통적인 제조업 생산품 없이는 최첨단 정보기술(IT) 장비에 들어갈 부품도 생산할 수 없다. 미래 사회도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이고,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 문화, 예술, 철학과 인문학 이 모든 것이 여전히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다.

대학의 교육혁신도 마찬가지다. 대학의 기본이 되는 본질의 영역과,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져야 할 혁신의 영역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최근 ‘융합’이 대학가의 화두로 등장하면서 많은 대학이 새로운 전공을 개설하고 융합교과를 개설하고 있지만 단순한 형식과 명칭의 변화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대학의 각 전공은 나름의 관점과 논리 체계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탐구해왔다. 혁신은 이렇게 축적돼온 각자의 관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3의 관점과 논리 체계를 구축할 때 가능해진다. 기본과 혁신을 구분하는 것, 동시에 혁신이 기본과 본질을 추구하게 하는 것, 그것이 4차 산업혁명을 위해 가장 우선돼야 할 일이다.

강정애 < 숙명여대 총장 kangjap@s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