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남이란 사람 없다"…존재 부인에 묘비조차 없을 듯
김정남 시신 넘겨받은 北, 재부검 통해 말레이 부검·수사 반박할 듯


말레이시아 정부가 김정남의 시신을 피살 46일만인 30일 오후 북측에 인도했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발표문에서 "부검이 완료됐고, 시신을 북한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가족의 편지가 접수됨에 따라 검시관이 시신 인도를 허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말레이시아 당국에 편지를 보낸 가족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복동생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그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정남은 죽어서도 함께 살던 가족이 있던 마카오로 돌아가지 못했다.

마카오가 아닌 다른 곳에 은신하고 있을 김정남의 둘째부인 이혜경 씨와 한솔·솔희 남매도 결국 아버지의 시신조차 볼 수 없게 된 셈이다.

김정남의 시신은 이날 오후 7시 23분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떠나 베이징으로 향한 말레이시아 항공 MH360편에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베이징에서 고려항공편을 이용해 김정남의 시신을 평양으로 옮길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말레이 외교가에선 말레이시아가 북한에 김정남의 시신을 넘길 가능성을 반반으로 여겨왔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이달 10일 사망자의 신원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으로 공식 확인하고 그의 자녀가 DNA 샘플을 제공했다고 밝힌 이후로는 북한으로 시신을 인도할 길이 사실상 막힌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김정남의 유가족은 시신 인수를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경찰 고위 당국자는 지난 16일 "김정남의 유가족이 시신처리를 정부에 일임했다"고 말했다.

김정남의 시신 관리를 담당하는 말레이시아 보건부의 수브라마니암 사타시밤 장관은 26일 유가족이 시신인도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미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고, 끝까지 나서지 않을 경우 정부가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은 김정남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사망자가 '김 철'이란 이름의 평범한 북한 시민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그가 북한 국적자란 점은 명확하기에 유가족이 시신 인수 의사를 밝히지 않음에 따라 국적 국가인 북한으로 가게 됐다.

유가족이 김정남의 시신을 포기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신변 안전 등을 우려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둘째부인 이혜경과 한솔·솔희 남매는 최근 중국령 마카오를 떠나 제3국으로 도피했기에 외부 활동을 할 형편이 못 된다.

대리인을 통해 시신을 인수한다고 해도 역추적 등을 통해 거주지가 노출될 위험이 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김정남의 첫째부인 신정희씨와 아들 금솔씨 역시 시신을 인수하기 어려운 처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정황을 감안할때, 베이징과 마카오에 거주하는 김정남 가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 역시 시신의 북한 인도를 선호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김정남의 시신이 화장된 상태로 인도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으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방부 처리와 냉동보관을 통해 온전한 상태로 시신을 넘겨 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김정남이 지난달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에 살해됐다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조사 결과를 부인해온 북한이, 차후 김정남 시신 재부검을 강행해 기존 결과를 뒤집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사망자는 김정남이 아닌 김철이라는 북한 외교관이고, 사망 원인도 VX로 인한 것이 아닌 심장마비사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여튼 김정일의 장남이면서도 이복동생인 김정은에게 후계자 자리를 빼앗긴 뒤 수년 동안 해외를 떠돌다가 북한의 소행으로 암살된 김정남은 이제 차디찬 시신이 돼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러나 김정은이 집권하는 북한으로선 김정남의 존재를 철저하게 부인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김정남의 묘 앞에 묘비조차 세워지지 않은 채 흔적없이 사라지는, 죽어서도 '비운의 황태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hwang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