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입자물리연구소(LHC) 지하 150m에 설치된 가속관.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뒤 충돌시켜 빅뱅 직후와 유사한 환경에서 새로운 입자를 찾고 있다. CERN 제공
유럽입자물리연구소(LHC) 지하 150m에 설치된 가속관.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뒤 충돌시켜 빅뱅 직후와 유사한 환경에서 새로운 입자를 찾고 있다. CERN 제공
스위스 제네바 인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는 세계 최대 과학실험장치인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설치돼 있다. 지하 150m에 있는 길이 27㎞ 링 모양 파이프에선 지금도 양성자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한 뒤 충돌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다. 2012년 검출기 중 하나인 뮤온압축솔레노이드(CMS)와 아틀라스(ATLAS) 검출기에서는 세상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16개 입자가 질량을 갖게 될 때 잠시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입자를 찾는 데 성공했다. 1960년대 피터 힉스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가 제안한 바로 힉스 입자였다. 50년간 존재를 증명하기 어려웠던 이 입자가 검출되면서 힉스 교수 등은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힉스입자 찾기' 10년 파트너 한국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준회원국 자격을"
당시 이 사실을 함께 기뻐한 세계 75개국 과학자 중에는 한국 과학자들도 있다. 한국이 CERN과 LHC의 건설과 운영, 기초 물리연구를 함께해온 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지난달 30~31일 서울 강남 임페리얼팰리스호텔에서는 한·CERN 협력 10년을 맞아 그간 성과를 되돌아보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한국은 LHC에 설치된 7개 검출기 중 CMS와 대형이온충돌기실험(ALICE·앨리스) 검출기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힉스 입자 일등 공신인 CMS 검출기 제작에 20억원을 대고 핵심 부품 660개를 공급했다. 한국앨리스실험팀을 이끄는 윤진희 인하대 교수는 “중이온이 쪼개진 후 상태를 살피는 반도체 검출기(ITS) 등 개발과정에 시온테크놀러지와 퓨렉스 등 국내 중소기업 3~4곳이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은 LHC에서 쏟아지는 막대한 양의 정보처리를 돕는 일도 맡고 있다. LHC 검출기에선 1년에 50페타바이트(PB=1PB는 1000조바이트)의 정보가 쏟아진다. 1PB는 단행본으로 따지면 10억권에 해당하는 정보량이다.

CERN은 가속기에서 생성된 막대한 양의 자료를 처리하기 위해 각국 연구소를 데이터센터처럼 운영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2014년부터 세계 11번째로 LHC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배분받아 주요 연구자들에게 공유하는 최상위 데이터센터인 ‘티어-1’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CMS실험팀에 참여하는 김태정 한양대 교수는 “한국 과학을 보는 인식에 긍정적 효과를 미쳤다”고 평가했다. CMS에 참여하는 9개 대학과 앨리스에 참여하는 6개 대학들은 지금까지 736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에커트 엘슨 CERN 부소장은 “한국의 연구 인력은 비유럽권 44개 비회원국 가운데서도 가장 많다”며 “한국에 22개 정식 회원국처럼 운영 의결권을 갖는 준회원국 참여를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