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직사회 최대 관심사는 ‘차기 정부 차관을 누가 맡을지’다. 부처 2인자인 차관은 장관과 달리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없이 바로 임명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꾸리지 못하는 다음 정권은 출범과 함께 차관에 믿을 만한 인물을 심고 행정부 장악에 나설 것이 유력하다. 장관 대신 실세 ‘왕차관’에게 국정 운영 주도권을 맡기는 이른바 ‘차관 정치’다.

실세 차관은 신임 장관이 인사청문회를 뚫고 내려오기까지 약 2~3개월 동안 인사, 국정과제 선정 등 전권을 휘두를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렇자 관료들은 ‘줄대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 실세 차관을 꿈꾸는 1급들은 대선 캠프에, 국·과장들은 ‘실세 차관’ 후보를 기웃거리고 있다. 정책은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새 정부 이끄는 '실세 차관'] 허수아비 장관에 '왕차관'…관가 "새 정부 차관 누가 되나" 더 관심
◆호남·노무현 정부 청와대 경력 각광

벌써부터 공직사회에서는 ‘차기 차관 요건’이 거론된다. ‘문재인 대세론’ 때문인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캠프와 가까운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네 가지’가 주로 회자된다. 충족하는 요건이 많을수록 ‘차기 차관’에 가까운 인사로 평가된다.

첫 번째 요건은 ‘호남 출신’이다. 문 후보 고향인 부산·경남(PK) 출신도 ‘진골’ 정도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근무 경력이다. 지난 10년간 ‘걸림돌’이던 노무현 정부 청와대 근무 경력이 차기 정권에선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세 번째는 문캠프 실세로 알려진 ‘3철’(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전해철 민주당 의원,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친분이다. 마지막으로 문 후보 모교인 경남고, 경희대 출신들도 은근히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표정 관리 중인 ‘차관 후보’들

각 부처에서 차기 차관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대부분 네 가지 중 두세 가지 이상을 충족하는 인물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선 1급 S씨가 부위원장 유력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S씨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4년 동안 근무했고, 전해철 의원과 친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신 학교도 경희대 법대다. 다만 현직 부위원장이 임명된 지 두 달밖에 안 된 점, 공정위 부위원장은 임기 3년이 법으로 보장된 ‘임기제 공무원’인 점이 관건으로 꼽힌다.

기획재정부에서 차관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해외 근무 중인 1급 출신 K씨다. K씨는 호남 출신으로 직전까지 국회 업무를 담당하는 기획조정실장을 맡으면서 민주당 의원들과 두루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번 정부에서 창조경제 관련 조직을 맡은 경력이 흠으로 꼽힌다. 그래서 강력한 후보로 부상한 인물이 현직 1급 S씨다. S씨는 호남 출신으로 국제금융 업무를 오래 맡았고 내부 신망이 높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1급 P씨가 유력 차관 후보로 꼽힌다. P씨는 호남 출신으로 정세균 국회의장이 장관을 하던 시절 비서관을 지내 민주당에서 인지도가 높다. P씨보다 한 기수 아래인 광주 출신 K실장도 후보로 거론된다.

사회 부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환경부에선 L실장과 P국장이 경쟁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남 구례 출신인 P국장이 한 발 앞서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선 캠프에 몰래 정책 보내

차기 차관에 1급 관료 출신이 아니라 교수나 정치인이 날아올 가능성도 크다. 외부에서 차관이 오면 1급들은 옷을 벗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 때문에 관료들은 지연 학연 등 인맥을 총 동원해 유력 캠프에 줄을 대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일부 고위 관료는 캠프에 정책을 갖다 바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캠프 관계자는 “중앙부처 고위 관료들의 정책 제안이 하루에도 몇 번씩 팩스로 날아온다”며 “비슷한 아이디어가 많아 귀찮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국·과장들은 ‘차관 후보’로 거론되는 선배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한 경제부처 사무관은 “차관 보고보다 1급 보고 때 신경을 더 쓰는 것 같다”고 전했다.

황정수/심은지/오형주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