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달러의 과도한 특권'은 지속될 수 있을까
글로벌 시장에서 특정 제품을 거래할 때 미국 달러화로만 결제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너무 단순화한 비유겠지만,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단순히 달러를 발행해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면 되는 데 비해 다른 국가는 물품 수입을 위한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교역을 하거나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를 차입해야 할 것이다.

기축통화로서 이런 달러화 특성에 대해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은 1960년대 재무장관 시절 “과도한 특권을 누린다”고 공격했다. 미국은 대외자산보다 대외부채가 많은 국가지만 투자소득 수지는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은 해외자산 투자에서는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으나 외국인의 미국 내 투자에 대해서는 수요가 많은 데다 안전자산이란 이유로 낮은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유동성 위기 걱정이 없어 낮은 금리로 단기차입을 하고 이를 고수익을 내는 장기자산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특권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 질서를 정비하기 위한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하면서 달러화의 기축통화 역할이 정착됐다. 브레턴우즈 체제 아래에서 각국 통화는 달러화에 연계되고 달러화는 금 1온스당 35달러로 가치가 연동됐다. 대공황으로 붕괴된 금본위제도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달러화에 기축통화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미국은 국내 정책의 재량을 확대하고 국제수지 적자 우려를 해소했다. 이는 미국이 생산과 저축 능력 이상으로 과소비를 할 수 있게 해줬고,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의 원인이기도 하다. 브레턴우즈 체제도 1970년대 초반 미국이 달러화와 금의 교환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각국은 자국의 환율제도를 정하고 결국은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했다.

그럼에도 달러화가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첫째, 미 중앙은행(Fed)은 물가안정에 우선해 달러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둘째, 미국의 금융시장, 특히 국채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유동적이고 거래 규모가 가장 크다. 유동성이 높을수록 거래 시 가치손실이 작아진다. 셋째, 미 국채는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간주되고 있다. 위기가 발생해도 안전자산으로서 가치가 상승하니 투자자산으로 적격이다.

기축통화가 누리는 ‘과도한 특권’을 나누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유럽에서는 유로를 만들었고 영국은 런던을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육성해 파운드화 위상을 높이려 했으며 일본과 중국은 각각 엔화와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하지만 아직은 달러화 지위를 넘보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유로화는 유로위기 이후 역할이 축소됐고 영국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으로 파운드화의 역할 확대를 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은 자본 유출로 인한 위안화 약세를 막기 위해 자본 통제를 강화하고 있어 오히려 국제적인 위상이 축소되고 있다.

그렇다고 달러화의 과도한 특권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미국의 국가채무가 급속히 확대돼 투자자 신뢰를 상실하게 되면 달러화에 대한 신뢰도 무너질 수 있다. 이 경우 여타 통화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복수 기축통화제도가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경제가 누리는 또 다른 특권은 국제 거래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언어인 영어다. 영어는 언어 습득을 통해 따라갈 수 있으나 달러화의 특권은 그러하지 못하니 독점적이고 과도할 수밖에 없다. 이런 특권을 누리는 미국이 오히려 세계화와 불공정 교역으로 소득불균형이 심화되고 일자리가 사라졌다며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모습은 아이러니컬하기만 하다.

최희남 < IMF 상임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