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종합상사들이 경쟁적으로 ‘병원 수출’에 나서고 있다. 3일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미쓰비시상사는 2020년까지 미얀마에 300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을 세운다고 한다.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요구하는 현지 부유층을 겨냥해 암 심장병 등 전문 클리닉도 운영할 예정이다. 인근 국가에 의료시스템 수출도 타진하고 있다.

이토추상사는 중국에 진출한다. 중국 최대 국유기업 CITIC와 손잡고 올가을 광둥성과 산시성 등의 CITIC 산하 7개 병원에 첨단 의료 기자재를 공급하고 진료를 시작한다. 이토추상사가 2015년 CITIC에 6000억엔(약 6조원)을 투자해 제휴를 맺은 이후 첫 사업이다. 미쓰이물산은 ‘의료 일류(日流)’ 확산의 일등공신이다. 미쓰이물산은 싱가포르 등 10개국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아시아 최대 병원그룹 IHH에 2200억엔을 투자했다. 미쓰이물산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병원은 80여개에 이른다.

글로벌 의료산업을 주도하는 일본의 기세가 매섭다. 기초과학이 탄탄한 데다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뛰어난 의료기술까지 갖춘 덕분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일본 기업들은 날개를 단 모습이다. 일본은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의 세 화살 중 하나인 ‘성장전략’의 핵심으로 의료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고령화로 늙어가는 일본이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의료산업을 국가적 전략산업으로 키우려는 역발상이 돋보인다.

아베 총리는 2013년 ‘건강의료전략추진본부장’을 맡아 의료산업 글로벌화를 챙겼다. 2015년 4월엔 문부성 후생노동성 경제산업성 등 3개 부처에 흩어져 있던 의료·바이오 분야를 의료연구개발기구(AMED)로 통합했다. 정부부터 칸막이를 걷고 규제 개혁에 나선 것이다. 아베 총리는 자신을 ‘일본 의료분야 톱 세일즈맨’으로 지칭한다. “10년 전 첫 총리 임기 때 위장병 등으로 사임해야 했지만 일본 의술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다”는 얘기는 아베 총리가 정상외교에서 식상할 정도로 자주 써먹는 레퍼토리다.

이런 일본을 보면서 국내 의료인들은 부럽기만 하다. 의료산업이 고령화 시대의 유망 성장산업이라는 말은 귀가 따가울 정도지만 뭐 하나 속 시원하게 달라지는 게 없어서다. 원격진료는커녕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을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게 단적인 징표다. 일본은 날개를 달고 세계로 나아가는데 한국은 “맹장수술비가 1000만원을 넘을 것”이라는 ‘영리병원 괴담’에 수십년째 발목 잡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