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인 정가원(오른쪽)·이은영 쿠킹메이트 공동 대표. 여느 맞벌이 부부처럼 매일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지만 6살 아이를 위해 배달 음식의 유혹을 참고 번갈아가며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부부 사이인 정가원(오른쪽)·이은영 쿠킹메이트 공동 대표. 여느 맞벌이 부부처럼 매일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지만 6살 아이를 위해 배달 음식의 유혹을 참고 번갈아가며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오늘 뭐 먹을까. 아빠한테 먹고 싶은 거 만들어달라고 해봐~"

남편은 할 줄 아는 요리가 '라면' 밖에 없다고 한다. 듣고 있던 아내는 화가 난다. "누구는 처음부터 식모였나."

티격태격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둘 중 한 명이 스마트폰을 찾는다. 배달 앱(응용프로그램)을 켜고 또 다시 고민에 빠진다. "중식 한식 양식. 골라봐."

그렇게 한 끼를 떼우고 나면 아이에 대한 미안함은 공평하게 둘의 몫이었다. 6살 고사리 손으로 피자를 집으며 방긋 웃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몸은 편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부는 국내 최초 레시피 앱 '오마이셰프'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우리가 만든 레시피 앱보다 배달 앱을 더 자주 쓰고 있는 거에요. 충격이었죠. 아이도 태어났으니 요리를 더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왜 그럴까 되짚어보니 레시피대로 요리를 하려면 준비할 것도 많고 어려웠어요. 새로운 앱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죠."

정가원 쿠킹메이트 대표는 '밥타임'을 요리가 아닌 끼니 준비를 도와주는 앱이라고 소개했다. 누구나 큰 맘 먹지 않고도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뚝딱 만들 수 있는 음식 레시피를 모아놨다는 얘기다.

밥타임은 메뉴 추천부터 식단짜기, 장보기 메모, 냉장고 관리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식사 준비 앱이다. 2009년 정 대표가 아내 이은영 쿠킹메이트 공동 대표와 만든 레시피 앱 오마이셰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오마이셰프를 비롯한 기존 레시피 앱은 요리법을 모르는 음식을 만들 때 주로 써요. 요리를 해야하는 특별한 날 사용할 때가 많죠. 하지만 실생활을 보면 끼니마다 메뉴조차 정하지 못하는 주부들이 많아요. 밥타임은 '이 요리를 어떻게 만들까'가 아닌 '오늘은 뭐 해먹을까'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주는 앱이에요."(이 대표)
정가원·이은영 쿠킹메이트 공동 대표는
정가원·이은영 쿠킹메이트 공동 대표는 "밥타임을 통해 식사 준비가 즐겁고 재밌는 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집밥이 끼니 해결 이상의 행복을 가정에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다. /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부부는 취미삼아 만들었던 레시피 앱을 5년 만에 대수술하기로 했다. 껍데기만 바꾸지 않고 전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사업화하겠다는 각오로 머리를 맞댔다. 앱이 없으면 식사 준비가 어려울 만큼 이용자들의 일상에 파고드는 '국민 식사 준비 앱'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밥타임을 내놓기까지 오마이셰프를 2년 가까이 손봤다. 그동안 축적해온 레시피 데이터베이스(DB)가 있었지만 새로운 성격의 레시피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요리 블로그에 의존했던 기존 레시피는 조리법이 까다롭고 재료 준비가 번거로운 게 많았기 때문이다.

새 레시피의 조건은 두 가지였다. 구하기 쉬운 재료일 것. 만들기 쉬울 것.

"최근 떠오른 신조어 중에 '냉파'라는 말이 있어요. 냉장고 파먹기의 줄임말인데, 새로 장을 보는 대신 냉장고에 묵혀둔 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걸 의미해요. 밥타임의 지향점이 바로 냉파라고 보면 됩니다."(이 대표)

"냉장고에 썪는 재료가 사라졌어요." 이은영 쿠킹메이트 대표는 밥타임 사용 후 달라진 점으로 깨끗해진 냉장고를 꼽았다. /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냉장고를 구석구석 파먹기 위해 블로그뿐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외국 요리 방송, 공모전 등을 참고해 자체 제작 레시피의 비중을 늘렸다.

"기존 블로그에 올라오는 레시피는 난이도가 있기도 하고, 블로거들의 연령대가 높아 트렌디한 먹거리를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밥타임의 타깃 이용자층인 20~30대 주부는 음식의 유행에도 민감하거든요. 저희가 직접 만들었던 '쌍문동 치즈밥' '회오리 핫도그·감자' 레시피는 반응이 꽤 좋았어요."(정 대표)

"매주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특정 재료를 정해 공모전을 진행하는데 여기서 알짜 레시피들이 많이 나와요. 최근에 두부를 주제로 한 공모전에서 1등을 차지한 음식이 '두부 능글이'에요. 레시피를 올려주신 주부가 4대째 내려오는 두부 음식이라고 소개했는데 만드는 법도 간단하고 맛도 있었어요."(이 대표)

실제로 밥타임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레시피는 거창한 요리보다 한 끼 준비에 가까운 수준이다. 밥타임이 요리를 못한다는 남편, 아내들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는 이유다.

"요리가 어려워? 그럼 쉬운 레시피를 줄테니 식사 준비는 같이하자는 게 제 의도였어요. 맛은 장담할 수 없어요.(웃음)"(이 대표)

"솔직히 저희도 평일 저녁은 못해먹을 때가 많아요. 대신 아침과 주말엔 꼭 밥상을 직접 차려먹으려고 해요. 밥타임을 만들며 알게 된 레시피 중 의외로 쉬웠던 게 오븐 요리였어요. 재료를 한 데 모아 오븐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니까 바쁜 아침에 딱이에요."(정 대표)
밥티임은 식재료 데이터 수집·분석을 통한 개인화 메뉴 추천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 사진=쿠킹메이트 제공
밥티임은 식재료 데이터 수집·분석을 통한 개인화 메뉴 추천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 사진=쿠킹메이트 제공
메뉴 추천부터 냉장고 관리까지 각각의 개별적인 기능을 유기적으로 연동시키고 직관적인 사용자환경(UI)을 만드는 일에도 공을 들였다. 그 결과 당초 계획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밥타임의 강점인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었다.

기존 레시피 앱이 단순히 레시피를 모아 보여주는 식이었다면 밥타임은 이용자가 입력해둔 현재 냉장고 속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보여준다. 이들 메뉴로 일주일치 식단을 짤 수 있고, 식단을 기반으로 부족한 식재료가 담긴 장보기 리스트도 생성된다. 이용자가 리스트에서 구입한 것을 체크하면 자동으로 냉장고 재료에 반영된다.

정가원 쿠킹메이트 대표는
정가원 쿠킹메이트 대표는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밥타임을 쓰는 주부를 보고 뿌듯했던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식사 준비 시 하는 고민은 크게 메뉴와 재료 두 가지거든요. 메뉴를 정하면 재료는 뭐를 얼마나 더 사야할까 고민이죠. 메뉴 선택부터 재료 준비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앱을 만들고 싶어요. 앱 안에서 식재료를 주문, 배달시킬 수 있는 기능도 넣기 위해 유통 회사와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있어요."(이 대표)

최근 정보기술(IT) 업계 화두인 음성 인식 기반 인공지능(AI) 비서와의 접목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대화로 식단 구성과 재료 주문, 냉장고 관리를 해결하는 '홈푸드 매니저'로 거듭난다는 복안이다.

현재 밥타임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23만건, 일 사용자 수는 약 1만3000명을 기록하고 있다.

"오마이셰프는 스마트폰이 국내에 처음 들어왔을 때 출시되면서 성장세가 더 가팔랐어요. 전반적으로 앱 다운로드 수가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밥타임의 출발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한 때 웰빙이 유행했듯 집밥 열풍이 오면서 밥타임도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해요."(정 대표)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