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교수 "구한말 외교현실 입체 조명…김훈 의식하며 썼다"
“조선 대표로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은 신헌(申櫶·1810∼1884)은 봉건시대와 근대 사이에 선 경계인이었습니다. 밀려오는 왜양(倭洋)과 사대부의 척사(斥邪)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해 날카로운 창이 조선의 심장에 깊숙이 박히는 걸 막았죠. 당시 신헌의 역할에서 지금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해 이번 소설을 썼습니다.”

한국 사회의 갈등구조에 깊이 있는 평론을 해온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61·사진)가 소설가로 ‘변신’했다. 19세기 말 열강에 둘러싸인 조선을 다룬 장편 역사소설 《강화도》(나남)를 5일 발표했다. 송 교수가 처음 펴낸 소설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조선 후기 무신 겸 외교관인 신헌. 명분만 고집한 조선 사대부·유생과 개항이라는 역사적 흐름 사이에서 고뇌하며 길을 찾는다. 송 교수는 이날 서울 인사동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치(文治)를 한 조선에서 신헌은 19세기 이후 문헌에 남아 있는 유일한 무장(武將)이었다”며 “근대사를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 사람의 역할에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논문 글쓰기와는 다른 예술의 언어는 현실을 재구성하는 좋은 그릇”이라며 “학자로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글쓰기를 위해 이번 작품을 냈다”고 설명했다.

송호근 교수 "구한말 외교현실 입체 조명…김훈 의식하며 썼다"
소설은 당시 일본의 무장이자 정치가였던 구로다 기요타카가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로 쳐들어오며 시작된다. 신헌은 쇄국정책을 고집하는 조정에 의해 협상 책임을 지고 강화도로 파견된다. 신헌은 유학을 배우며 자랐지만 개화파 인물과 폭넓게 교류해 생각이 깨어있는 인물이다. 그는 구로다의 강화도조약 체결 요구를 막지는 못하지만 협상을 통해 내용을 교린(交·이웃 나라와 사귐) 조약에 가까운 형태로 만든다. 신헌은 쇄국정책과 개항 요구 사이에서 놀라운 협상력을 발휘한다.

“지난해 말 미국과 중국의 함대가 남중국해에서 맞붙었습니다. 한류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로 중국에서 쫓겨났죠. 그러나 국내 정치는 탄핵 정국에 집중하고 있었고 이런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사건이 적절히 처리되지 못하고 미봉된 채로 시간이 흘렀을 때 미래는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요.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던 차에 오랫동안 주목해왔던 신헌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송 교수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신헌이 당시 완충자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처럼 21세기의 대한민국도 열강 사이에서 완충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완충 역할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사드 문제를 들었다. 송 교수는 “한국은 미국·일본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지만 중국과는 일본을 상대하는 역사동맹을 맺었다”며 “이 사이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이 뭔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가 소설 집필에 들어간 때는 불과 4개월 전인 지난해 12월이었다. 하루 10시간씩 투여해 두 달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대학 때부터 문학작품 쓰기에 관심이 많아 습작을 종종 해왔던 그다. 조용필 곡 ‘어느날 귀로에서’를 작사할 정도로 문재(文才)를 타고났다. 그는 ‘이제 조금 자유로워져도 될 나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소설을 냈다고 한다. “역사소설의 대가인 김훈 작가를 의식하면서 썼습니다. 책을 보내드릴 생각입니다.”

송 교수는 “앞으로 꾸준히 소설을 쓸 생각”이라고 했다. 다음 작품에서는 북한 소설가 김사량(1914~1950)을 다룰 생각이다. ‘소설가를 다루는 소설’이다. 그는 “김사량은 분단과 6·25전쟁을 거치며 북한 종군기자로 활동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며 “김사량의 삶 속에서 어떻게 통일을 이룰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