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장성세(虛張聲勢)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헛되이 목소리의 기세만 높인다는 뜻으로, 주로 실력 없이 허세를 부리는 경우에 사용한다. 요즘은 기업이나 정부나 “우리 제품을 믿어 달라” “우리의 공공 서비스와 안전 관리를 믿어 달라”고 하지만 신뢰할 만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 외치는 것이 마음에 와 닿지 않음은 필자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냉장 유통해야 하는 육가공 식품이 과연 한 달 내내 기준 온도가 지켜지며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해 기업들이 냉장 보관했다는 데이터를 제시하더라도, 간단하게 기업의 컴퓨터 자료를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전문가들을 설득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사태에서 보듯이 선박의 안전 관리나 대처에 관한 조치들이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 아래 돌아가는 것이 아닌 이상 그냥 “안전하다” “정부를 신뢰해 달라”고 외치는 것은 말 그대로 허장성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정부가 맞닥뜨린 이 신뢰 문제의 해결책으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신기술 중 하나로, 중앙기관의 개입 없이 제3자 간 신뢰를 보장해주는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기술 자체보다는 비트코인이라는 전자화폐가 특정 은행과 같은 중앙기관 없이 지난 10년간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한 번도, 그 누구도 비트코인 자체를 위·변조하거나 해킹에 성공한 사례가 없는 것으로 더 잘 알려진 기술이다.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비트코인은 인터넷상에서 누구와도 믿고 거래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인터넷상에서 다양한 정보를 허가받은 사람은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도록 투명하게 유지하고, 누군가 이 정보들을 위조하거나 변조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정보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항공기의 블랙박스가 모든 운항 관련 정보를 다 담고 있지만 사고 충격이나 외부 해킹으로부터 안전하게 정보를 저장해 어떤 사고가 나도 이 데이터를 신뢰하고 이를 기반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금융 분야에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재화의 거래에 대한 신뢰 수단으로 활용됐으나 많은 전문가는 공공 서비스 분야에 적용될 때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육가공 식품은 유통기간 관리에 관한 데이터를 기업의 컴퓨터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블록체인에 저장한다면 유통기간의 냉동 상태 기록을 해당 기업조차 위·변조할 수 없으니 유통 기록을 제시하면 누구나 그 기록을 신뢰할 것이다.

이런 기술의 장점으로 해외 각국 정부는 이미 블록체인을 도입해 신뢰받는 정부, 새로운 형태의 정부 시스템을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 시행, 의료정보 제공 등 정부의 전산·전자·행정 분야를 비롯해 공공부문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호주와 에스토니아는 국가 차원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 전자투표 방식을 개발하고 있으며, 미국은 의료정보 관리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추진하는 것을 연구 중이다. 중국은 항저우에 스마트 신도시의 인프라로서 블록체인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추세 때문인지 다보스 포럼에서는 2027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가 이 블록체인에 저장될 것임을 예측하기도 했다.

이렇듯 각국 정부는 이미 적극적으로 블록체인 기술 도입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말로만 신뢰받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무언가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반드시 블록체인 기술이 아니어도 좋다. 정부도 무언가 혁신적 기술을 과감하게 도입하고 적용해 말로만 외치는 정부가 아니라 보여주는 정부로 변화하길 기대해 본다.

박수용 < 서강대 교수·컴퓨터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