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증오마케팅
미국에서 보수성향으로 유명한 시민단체 ‘티 파티 패트리어츠(Tea Party Patriots)’의 전략가인 마이클 프렐은 인생경로가 이색적인 인물이다. 나이트클럽과 식당 경영자에서 정치 쪽으로 항로를 바꾸면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 등 보수정객들의 집권을 크게 도왔다. 달라이 라마 등 반(反)중국 명사들과도 함께 일했다. 정치광고 쪽에 일가를 이룬 뒤 아예 광고마케팅사를 차려 잘나가고 있다. 《언더도그마》(Underdogma, 2011년)라는 책의 저자로 더 유명한 인사다.

‘사회적 약자는 선(善)’(언더도그마 현상)인 반면 ‘사회적 강자는 악(惡)’(오버도그마 현상)이라는 기형적 대중심리를 지적한 명저가 이 책이다. 동병상련의 보편적 정서를 넘어선 수준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증오를 발산하는 현대 한국인의 사회병리적 의식을 메스로 콕 찔러대는 듯하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언더독’들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오버독’들은 힘이 세다는 것만으로 아예 질시와 비난의 대상처럼 돼버린 것도 같다. 꽤나 만연한 시대적 오류다.

이런 증오심리를 자극하며 십분 활용하는 대표적인 데가 영화판이다. 검사와 조폭, 기업가와 비정규직 등이 나온 무수한 영화의 프레임이다. 화제작이라는 ‘내부자들’ ‘더 킹’ 같은 영화가 그렇다. ‘7번방의 선물’ 같은 데서 경찰청장은 구악의 상징으로 설정됐다. ‘분노마케팅’ ‘증오마케팅’은 TV 드라마에서도 예외가 드물다. 불황의 출판계도 탈출구로 기웃거리는 테마다.

분노와 증오의 세일즈 대열에서 빠질 수 없는 부류가 정치인이다. 대놓고 ‘분노하라!’고 불을 지른다. 때로는 아예 뒤집자는 식이다. 분노마케팅, 증오마케팅에 2030세대를 겨냥하는 ‘청춘마케팅’ 기법이 가미될 때의 휘발성과 폭발력을 잘 안다. 그게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인지….

관객수 아니면 표, 증오마케팅의 노림수는 뻔하다. 당연히 대중예술도, 정치도 ‘2% 이상’으로 많이 부족하다. 영화만 해도 언필칭 예술이라면 카타르시스는 필수다. 이런 정화작용을 거쳐야 뭔가 한 단계 승화가 된다. 본디 정치도 이념과 철학, 가치와 원칙을 표와 교환하는 마케팅이라면 증오 이상의 것을 제시해야 한다. 의사나 전문 컨설턴트들의 깍쟁이 같은 ‘공포마케팅’보다 몇 단계 아래다.

다시 정치의 계절이다. 가뜩이나 언더도그마 현상이 유난스런 한국 아닌가. 관용마케팅, 화합마케팅은 고사하고 말이라도 희망마케팅, 미래세일즈가 그립다. 차라리 그런 구호라면 내용이야 조금 부실한들 어떤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