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바람의 말을 전하는 바닷속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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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 소설가 >
요즘 전화기는 참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 누구와 이야기할 때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기능을 전화기를 통해 해결한다. 얼마 전까지 컴퓨터로만 주고받던 이메일도 휴대폰으로 다 처리한다. 예전 같으면 신문을 펼치고 라디오를 틀어야만 들을 수 있는 세상 소식도, TV 앞에 앉아야만 볼 수 있는 드라마도 휴대폰이 다 해결해 준다. 참 간단하고도 살기 편한 세상이다.
그중에 내가 휴대폰으로 자주 확인하는 것이 오늘의 날씨다. 외출할 때도 확인하고 그냥 집에 있을 때도 확인한다. 오늘은 기온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바깥 날씨가 춥지는 않은지, 눈이나 비가 오지는 않는지 확인하면 지금 당장의 날씨와 기온뿐 아니라 내일과 모레, 다음주 날씨까지도 알려준다.
어릴 때는 그걸 집안 어른들이 짐작으로 알려줬다. 돌아가신 지 아주 오래인 할머니는 게를 먹은 다음 안방 앞 처마 끝에 게딱지 두 개를 서로 등을 맞대어 매달아 놓았다. 커다란 집게발을 가진 게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악귀를 쫓는다고 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그런 게 다 미신이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우리 기억에 봄과 가을 1년에 두 번 게딱지를 바꿔 달았다.
게가 악귀를 쫓는지는 알 수 없어도 할머니는 방안에 앉아 게딱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마당을 지나가는 바람의 말을 듣고 그들이 가는 길 및 양과 세기를 짐작했다. 때로는 놀랍게도 방안에서 게딱지가 서로 등을 부딪는 소리만 듣고도 어느 바람이 비를 몰고 올 바람인지 가려냈다. 할머니에겐 깊은 바닷속 게가 허공을 지나가는 바람의 전령사였다. 이따금 마루로 올라와 방안을 기웃거리는 개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듯, 게딱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과도 그가 온 길의 소식을 묻고 행패 없이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듯 웅얼웅얼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 한옥을 허물고 새로 지은 집은 처마가 없는 집이었다. 세상이 바뀌는 것도 참 여러 모양이다. 새로 집을 지어 처마가 사라진 다음 이제 예전의 할머니보다 더 나이든 어머니가 게를 먹고 나서 이따금 게딱지를 마당가 자두나무에 매달아 놓는다. 대개 씨를 뿌리는 봄과 그것을 추수한 깊은 가을의 일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가 자라 어른이 될 때까지 한동안 하지 않던 일이었다. 어머니가 게딱지를 걸어두는 자두나무는 아버지가 젊었을 때 심은 나무였다. 어머니가 마당가의 여러 나무 중 자두나무에 게딱지를 매다는 것도 그것이 아버지가 심은 나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나무를 심은 아버지는 몇 해 전 여든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도 게딱지 두 개가 자두나무의 푸른 잎들 사이로 하늘바다를 헤엄치듯 바람에 몸을 맡기고 놀았다.
아마도 거기엔 바람이 어머니에게 전하는 말보다 어머니가 바람결에 누구에겐가 전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늘에 계신 할머니와 아버지는 지상에서 전하는 어머니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어릴 때는 막연히 미신처럼 보이고 주술처럼 보이던 일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거기에 과학과 논리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우리 생의 또 다른 의미들이 보이기도 한다. 이 봄날, 꽃은 멀미가 나도록 피었고, 그 꽃 속에 함께 봄놀이를 하고 있을 시골집 마당의 게를 생각한다.
이순원 < 소설가 >
그중에 내가 휴대폰으로 자주 확인하는 것이 오늘의 날씨다. 외출할 때도 확인하고 그냥 집에 있을 때도 확인한다. 오늘은 기온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바깥 날씨가 춥지는 않은지, 눈이나 비가 오지는 않는지 확인하면 지금 당장의 날씨와 기온뿐 아니라 내일과 모레, 다음주 날씨까지도 알려준다.
어릴 때는 그걸 집안 어른들이 짐작으로 알려줬다. 돌아가신 지 아주 오래인 할머니는 게를 먹은 다음 안방 앞 처마 끝에 게딱지 두 개를 서로 등을 맞대어 매달아 놓았다. 커다란 집게발을 가진 게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악귀를 쫓는다고 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그런 게 다 미신이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우리 기억에 봄과 가을 1년에 두 번 게딱지를 바꿔 달았다.
게가 악귀를 쫓는지는 알 수 없어도 할머니는 방안에 앉아 게딱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마당을 지나가는 바람의 말을 듣고 그들이 가는 길 및 양과 세기를 짐작했다. 때로는 놀랍게도 방안에서 게딱지가 서로 등을 부딪는 소리만 듣고도 어느 바람이 비를 몰고 올 바람인지 가려냈다. 할머니에겐 깊은 바닷속 게가 허공을 지나가는 바람의 전령사였다. 이따금 마루로 올라와 방안을 기웃거리는 개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듯, 게딱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과도 그가 온 길의 소식을 묻고 행패 없이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듯 웅얼웅얼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 한옥을 허물고 새로 지은 집은 처마가 없는 집이었다. 세상이 바뀌는 것도 참 여러 모양이다. 새로 집을 지어 처마가 사라진 다음 이제 예전의 할머니보다 더 나이든 어머니가 게를 먹고 나서 이따금 게딱지를 마당가 자두나무에 매달아 놓는다. 대개 씨를 뿌리는 봄과 그것을 추수한 깊은 가을의 일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가 자라 어른이 될 때까지 한동안 하지 않던 일이었다. 어머니가 게딱지를 걸어두는 자두나무는 아버지가 젊었을 때 심은 나무였다. 어머니가 마당가의 여러 나무 중 자두나무에 게딱지를 매다는 것도 그것이 아버지가 심은 나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나무를 심은 아버지는 몇 해 전 여든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도 게딱지 두 개가 자두나무의 푸른 잎들 사이로 하늘바다를 헤엄치듯 바람에 몸을 맡기고 놀았다.
아마도 거기엔 바람이 어머니에게 전하는 말보다 어머니가 바람결에 누구에겐가 전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늘에 계신 할머니와 아버지는 지상에서 전하는 어머니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어릴 때는 막연히 미신처럼 보이고 주술처럼 보이던 일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거기에 과학과 논리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우리 생의 또 다른 의미들이 보이기도 한다. 이 봄날, 꽃은 멀미가 나도록 피었고, 그 꽃 속에 함께 봄놀이를 하고 있을 시골집 마당의 게를 생각한다.
이순원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