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진품 공개' 장담한 간송미술관의 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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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충무공 후손들간 법정 다툼
'유물 이동 금지' 알면서도 "공개"
80여년간 쌓아온 신뢰 금 가
충무공 후손들간 법정 다툼
'유물 이동 금지' 알면서도 "공개"
80여년간 쌓아온 신뢰 금 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13일부터 여는 전시회 ‘훈민정음·난중일기 전(展): 다시 바라보다’는 시작 전부터 문화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조선시대 문(文)을 상징하는 성군 세종대왕과 무(武)를 대표하는 영웅 이순신 장군의 대표 저작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과 ‘난중일기’(국보 제76호)를 한자리에 전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특히 난중일기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실물이 공개될 예정이었다.
일반 개막을 이틀 앞둔 11일 열린 기자간담회는 난중일기의 실물본을 보기 위한 취재진으로 붐볐다. 하지만 간담회에 난중일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관계자는 “최고의 먹과 종이로 만든 훈민정음과 달리 난중일기는 손상된 곳이 많고 전시장에 오래 노출되면 종이나 먹의 빛깔이 상할 수 있어 이달 말께부터 보름 정도만 전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간담회가 끝난 지 여섯 시간도 지나지 않아 ‘훈민정음·난중일기 전’에 난중일기 진본이 전시되기 힘든 사실이 알려졌다.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회가 난중일기 소유자인 충무공 15대 종부 최모씨를 상대로 대전지방법원에 낸 유물 이동금지 가처분신청이 지난달 20일 받아들여졌기 때문. 최씨가 난중일기를 비롯한 충무공 유물을 암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는 종회의 주장에 법원이 손을 들어준 것이다.
난중일기를 보관하고 있는 현충사 관계자는 “법원 결정에 따라 원칙적으로 난중일기를 포함한 소장품은 현충사 밖을 나갈 수 없게 됐다”며 “종회와 최씨가 난중일기 전시에 대해 합의하면 가능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간송미술재단이 기자간담회가 열리기 직전 난중일기를 둘러싼 법적 논쟁과 가처분 판결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간송미술재단 관계자는 “(기자간담회가 시작된) 이날 오전 11시에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재단은 간담회에서 “이번 전시에서 난중일기 진품이 최초로 일반에 공개되는 게 맞느냐”는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간송미술관은 한국 사립 미술관·박물관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1938년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을 세운 간송 전형필 씨는 일제 시대에 훼손되거나 헐값으로 여기저기 팔려 나간 한국의 소중한 문화재 수천 점을 사재를 털어 수집했다. 전씨의 ‘문화재 지킴이’ 정신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는 미술관인 셈이다. 봄과 가을, 간송미술관이 정기 전시회를 열면 전시장은 항상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임기응변으로 전시 무산 가능성을 덮으려 하면서 간담회 직후 온라인에는 ‘난중일기 진품 첫 대중 공개’라는 제목을 단 수십 건의 기사가 나갔다. ‘훈민정음의 지혜와 난중일기의 용기를 배울 수 있는 전시’라는 기사 내용과 달리 이번 전시에는 난중일기 영인본(원본을 토대로 복제한 책)만 나오게 됐다. 미술계 관계자는 “80여년간 간송미술관이 쌓아 온 신뢰에 큰 금이 갔다”고 지적했다.
심성미 문화부 기자 smshim@hankyung.com
일반 개막을 이틀 앞둔 11일 열린 기자간담회는 난중일기의 실물본을 보기 위한 취재진으로 붐볐다. 하지만 간담회에 난중일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관계자는 “최고의 먹과 종이로 만든 훈민정음과 달리 난중일기는 손상된 곳이 많고 전시장에 오래 노출되면 종이나 먹의 빛깔이 상할 수 있어 이달 말께부터 보름 정도만 전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간담회가 끝난 지 여섯 시간도 지나지 않아 ‘훈민정음·난중일기 전’에 난중일기 진본이 전시되기 힘든 사실이 알려졌다.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회가 난중일기 소유자인 충무공 15대 종부 최모씨를 상대로 대전지방법원에 낸 유물 이동금지 가처분신청이 지난달 20일 받아들여졌기 때문. 최씨가 난중일기를 비롯한 충무공 유물을 암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는 종회의 주장에 법원이 손을 들어준 것이다.
난중일기를 보관하고 있는 현충사 관계자는 “법원 결정에 따라 원칙적으로 난중일기를 포함한 소장품은 현충사 밖을 나갈 수 없게 됐다”며 “종회와 최씨가 난중일기 전시에 대해 합의하면 가능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간송미술재단이 기자간담회가 열리기 직전 난중일기를 둘러싼 법적 논쟁과 가처분 판결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간송미술재단 관계자는 “(기자간담회가 시작된) 이날 오전 11시에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재단은 간담회에서 “이번 전시에서 난중일기 진품이 최초로 일반에 공개되는 게 맞느냐”는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간송미술관은 한국 사립 미술관·박물관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1938년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을 세운 간송 전형필 씨는 일제 시대에 훼손되거나 헐값으로 여기저기 팔려 나간 한국의 소중한 문화재 수천 점을 사재를 털어 수집했다. 전씨의 ‘문화재 지킴이’ 정신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는 미술관인 셈이다. 봄과 가을, 간송미술관이 정기 전시회를 열면 전시장은 항상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임기응변으로 전시 무산 가능성을 덮으려 하면서 간담회 직후 온라인에는 ‘난중일기 진품 첫 대중 공개’라는 제목을 단 수십 건의 기사가 나갔다. ‘훈민정음의 지혜와 난중일기의 용기를 배울 수 있는 전시’라는 기사 내용과 달리 이번 전시에는 난중일기 영인본(원본을 토대로 복제한 책)만 나오게 됐다. 미술계 관계자는 “80여년간 간송미술관이 쌓아 온 신뢰에 큰 금이 갔다”고 지적했다.
심성미 문화부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