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가짜뉴스 못잖은 '가짜' 상생협력
조기 대선을 맞아 ‘가짜 뉴스’ 경계령이 내려졌다. 언론보도를 가장해 진짜인 양 허위사실을 조작해 유포하는 행위는 처벌해야 마땅하다. 어디 뉴스에만 ‘가짜’가 있을까. 이름이나 명분은 그럴듯한데 실제 속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딴판인 공약이나 정책도 많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나 동반성장 내지 중소기업 육성정책에 그런 사례가 많다. 단기적으로 중소기업에 직접적인 혜택을 주는 것처럼 보여도 그보다 더 많은 사회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기도 한다. 보호정책 탓에 시장에 진입하는 업체 수 급증으로 과당경쟁을 초래하거나, 퇴출 지연으로 인해 건실한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는 수도 있다.

건설산업을 보자. 건설공사에 참여하는 주체는 ‘발주자-원도급자(종합건설업체)-하도급자(전문건설업체)-2차 협력자(자재, 장비업체 및 현장 근로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의 상생협력 정책은 원-하도급자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 윗단계인 발주자와 원도급자 간의 상생협력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발주자가 적정공사비를 책정하지 않아서 건설업체들이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사례도 종종 있다. 발주자가 예산절감을 위해 공사비를 적게 책정하고 저가 낙찰이 불가피한 입찰제도를 운영한다면 그 파장은 수주업체만이 아니라 아랫단계에 있는 하도급자나 2차 협력자에게도 전가된다. 현재 대부분의 공공공사는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대 발주자인 정부가 민간건설업계와 상생협력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민간건설업체만을 대상으로 한 규제는 상생협력을 명분으로 계속 양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하도급 규제다. 건설업체가 하도급을 줄 때는 계약의 적정성 심사도 해야 하고, 대금지급 기한도 준수해야 하고, 대금지급 보증도 해야 하고, 하도급 내용을 발주자에게 통보해야 하고 하다 보니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규제가 많다. 그러니 건설생산성도 낮을 수밖에 없고, 현실적으로 과도한 규제의 준수가 어려우니 편법이 난무하게 된다.

한때는 현장근로자의 임금 체불을 방지하고자 하도급대금을 모두 하도급자에게 직접 지불하겠다는 정책이 발표된 적도 있다. 다행스럽게 시행되지는 못했다. 임금 체불은 원도급자가 아니라 대부분 하도급자나 2차 협력자인 자재, 장비업체의 부도 등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임금 체불의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엉뚱한 정책을 발표했던 것이다.

원도급자인 종합건설업체 내부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정책도 문제다. 연간 매출이 10조원을 넘는 대형건설업체와 몇 억원밖에 안되는 중소건설업체도 다 같이 종합건설업체다. 기업규모의 현실적인 격차에도 불구하고 하도급은 전문건설업체만 받을 수 있다. 종합건설업체 간에는 하도급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종합건설업체 간에는 상생협력을 명분으로 대기업과 (지역)중소기업 간 공동도급이 사실상 의무화돼 있다. 문제는 적정공사비 책정이 되지 않거나 저가 낙찰로 인해 공공공사 대부분이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다. 대기업이 공동도급에 참여한 중소기업에도 손실을 분담시키게 되자 상생은커녕 중소기업이 도산하는 사례도 있다.

해외건설시장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진출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중소건설업체가 현지업체보다 영업력, 기술력, 가격경쟁력이 있어서 대기업과 보완관계가 있다면 상생협력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중소건설업체와의 동반진출은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대형건설업체마다 해외시장에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기록했다. 수익은커녕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에서 동반진출은 중소건설업체에 큰 리스크를 떠넘기는 것이다. 상생협력 차원에서 중소기업 보호나 육성정책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정책수단과 방법의 문제다. 규제를 통한 강제적인 상생협력은 ‘가짜’다. 실효성도 없으면서 불법과 탈법행위를 유발하고 부정과 비리를 양산할 뿐이다. 경제적 효율성에 기초한 자발적 협력이 가능하도록 상생협력 정책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

이상호 <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전문가 포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