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화백의 점화 ‘고요, 5-IV-73 #310’
김환기 화백의 점화 ‘고요, 5-IV-73 #310’
한국 미술시장의 ‘대장주’ 김환기 화백(1913~1974)의 작품이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다시 썼다.

12일 미술품 경매회사 K옥션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경매장에서 연 ‘4월 경매’에서 김환기의 청색 점화 ‘고요, 5-IV-73 #310’이 치열한 응찰 경합 끝에 65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이는 작년 11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63억2600만원(4150만홍콩달러)에 낙찰된 1970년작 노란색 점화 ‘12-V-70 #172’보다 2억2400만원 높은 가격이다.

김 화백의 점화는 2015년 10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47억2100만원에 팔릴 때 이미 경매 역사의 신기원을 열었다. 기존 최고가인 박수근의 ‘빨래터’(45억2000만원) 가격을 뛰어넘었던 것. 김 화백 작품은 이로써 1년6개월 사이에 세 차례나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날 경매는 추정가 하단인 55억원에 시작해 현장과 서면, 전화를 통한 응찰자들의 경합 속에 단숨에 60억원을 넘겼다. 이어 기존 최고가인 63억원에 도달하자 200여명이 운집한 경매장은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긴장감이 더해지며 현장 응찰자의 막판 경합 속에 63억원을 돌파하자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번 경매로 국내외 경매에서 거래된 한국 근·현대 미술품 중 최고가 1~6위를 모두 김 화백의 대형 점화가 차지하게 됐다.

김환기 그림 65억5000만원…국내 최고가 또 경신
최고가를 경신한 ‘고요, 5-IV-73 #310’은 김 화백의 작품세계가 절정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 ‘뉴욕시대’에 제작된 작품이다. 가로 205㎝, 세로 261㎝ 크기로 밤하늘 은하수를 연상시키는 점의 움직임과 사각형 흰색 띠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김 화백은 1973년 4월10일 일기에서 이 그림에 대해 “3분의 2 끝내다. 마지막 막음은 완전히 말린 다음에 하자. 피카소 옹 떠난 뒤 이렇게도 적막감이 올까”라고 적기도 했다.

김환기의 전면 점화는 대부분 파란색이다. 희귀한 데다 대작이어서 추정가도 55억~70억원으로 높게 책정됐다. 미술전문가들은 김 화백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장르를 독자적으로 흡수해 한국 고유의 모노크롬(단색화)을 만들어낸 것이 인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외 화단에 불고 있는 단색화 열풍과 ‘김환기 마니아’층이 확대된 점도 작품값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규 K옥션 대표는 “김 화백의 점화는 모두 100여점에 불과한데 90% 이상이 미술관 소장품으로 매매가 금지돼 시중에는 10여점만 유통되고 있다”며 “희소성이 큰 만큼 100억원을 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옥션은 이날 경매에서 출품작 157점 중 126점을 팔아 낙찰총액 164억원(낙찰률 80%)을 기록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