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규제가 핀테크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
“현금이 없는데, 어쩌지?” “웨이신으로 보내주세요.” “자! 휴대폰으로 인증하시지요.” “아이코, 난 중국 휴대폰이 없어!” “그럼 친구분한테 부탁해서 이 전화번호로 웨이신을 통해서 넘겨주세요.” “알겠어!” 지난달 어느 중국상점에서의 상황이었다. 중국술을 한 병 구매했다. 300위안(약 5만원)이 넘는 고가였다. 판매원이 제안했다. 자기가 가진 쿠폰을 사용하면 100위안을 싸게 살 수 있는데 자기에게 현금 30위안을 달란다. 알았다고 하고, 우선 신용카드로 계산했다. 문제가 생겼다. 30위안의 현금이 없었던 것이다. 급기야 휴대폰으로 송금해 달란다. 나중에 중국 친구에게 부탁해 휴대폰으로 30위안을 부쳐줬다. 이 상황은 내게 생각하게 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우리가 시장경제를 운영한 지 70년이 넘었다. 많은 사람이 신용사회 구축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정말 신용사회로 가고 있는가? 중국은 금융과 관련,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국가 중 하나다. 또 지급결제에서 상기 예처럼 통념을 뛰어넘는 엄청난 혁신을 하고 있다.

신용거래의 핵심은 과거의 금융이력과 본인확인 절차다. 일부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사후에 벌칙을 강하게 부과하는 것이다. 본인 인증 문제의 핵심은 중복 신분확인 절차다.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경우, 그 스마트폰이 실명으로 등록돼 있을 것이다(물론 대포폰에서는 다른 얘기지만 말이다). 또 하나의 절차가 스마트폰에 설치돼 있는 암호다. 자기 고유의 QR코드, 지문인식, 심지어 홍채인식을 거치는 경우 결국 두 번의 신분확인을 거쳐 당사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개인수표를 발행할 때 운전면허증과 사회보장번호(우리의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는 절차와 마찬가지다.

한국은 어떤가? 아마 60대 이후 세대는 스마트폰의 기능을 잘 활용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은행창구를 찾게 되고 많은 경우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는다. 은행권도 거래의 큰 부문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수세적이다. 선뜻 결제제도 선진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특히 금융거래의 빅데이터 활용이 배제돼 있어서 훨씬 다양하게 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데도 답보상태다. 이게 정말 개인의 정보보호를 위해서 불가피한 조치인가? 아니면 담당자가 문제발생 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봉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요자와 공급자 양쪽 다 문제이지는 않을까?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외치고 다니는 우리 정부당국자들의 자부심을 무색하게 한다. 중국에는 자율자전거라는 것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1위안만 지급하면 거리의 공용자전거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이 또한 신용에 기반한 제도다.

우리도 핀테크 도입을 자주 얘기하고 있다. K뱅크에 이어 6월부터 카카오뱅크도 영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벌써 2~3년의 세월이 가 버렸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원·위안화 직거래로 자국결제 카드를 활용, 편하게 쇼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우리 금융권은 뭘 챙겼을까? 우리는 거대 중국 경제 인근에 위치해 이점과 손해를 동시에 보고 있다. 중국에 속도의 혁신이 있다면 한국은 그 이상을 따라해야지 그러지 못하면 다시 변방으로 떨어질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많은 식자층에서 우리가 아시아의 원형(결국은 중국의 원형)을 보존했다고들 좋아한다. 우리의 한자발음이 당나라 시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느니, 주자학을 지키고 있다느니, 종묘제례를 원형으로 보존하고 있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문화인류학에서 얘기하는 중심과 주변부의 이론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핵심부는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주변부는 정체하고 만다는 얘기다. 복잡하고도 착잡한 심경이다.

정영록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