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연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빈체로 제공
2015년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연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빈체로 제공
2007년 12월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베토벤 대장정’에 나섰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을 1주일 만에 완주했다. ‘건반 위의 구도자’다운 도전이었다.

백건우가 10년 만에 다시 베토벤이란 ‘거산’에 오른다. 이미 그의 나이는 71세. 지칠 때도 됐지만 안주하지 않는 그다. 이번에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시도한다. 지난달 시작해 오는 10월까지 8개월에 걸쳐 열리는 이번 공연의 타이틀은 ‘끝없는 여정’. 백건우는 18일 서울 종로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음악가들 작품은 어느 정도 시작과 끝이 보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힌다”며 “(하지만) 베토벤은 아무리 거듭해도 늘 새로운, 끝없는 여정과 같아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더 깊고 넓어진 ‘백건우의 베토벤’

백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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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피아노의 신약성서’(구약성서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라고 불린다. 베토벤의 전 생애를 거쳐 작곡된 만큼 그의 음악 인생 전부를 비추고, 서양음악사의 흐름을 집대성한 걸작이기 때문.

“전곡을 연주하다 보면 베토벤의 생애가 한 편의 장편소설을 읽듯 펼쳐집니다. 이 멋진 드라마를 관객들과 같이 즐기고 싶습니다.”

두 번째 ‘대장정’이지만 그때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베토벤에 대한 해석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이라고 백건우는 설명했다. 그는 “모르는 곳에 도착해 문을 하나씩 천천히 열어보고 알아보는 것처럼 다시 연구를 했다”며 “10년 전엔 보이지 않던 전경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이번에는 순서도 자유롭게 정했다. 백건우는 “소나타에 번호가 붙여져 있지만, 이는 출판 순서일 뿐”이라며 “베토벤의 생각의 흐름에 스며들어 구성과 흐름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연주하는 곡은 소나타 1번이 아니라 20번.

“20번은 베토벤이 소나타 1번을 발표하기 전 스케치 한 곡이라 매우 순수합니다. 19번도 1번 발표 전에 쓰긴 했지만 장조인 20번이 공연 시작 곡으로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공연 장소도 서울에서 전국으로 넓혔다. 첫 공연지는 지난달 29일 충남 예산에 있는 충남도청문예회관. 이후 경남 김해, 제주 등에서 연주를 했으며 오는 10월14일 경기 수원SK아트리움에서 막을 내린다. 지방에서 확정된 공연만 21회에 달하며, 서울 공연(오는 9월1~8일, 예술의전당)은 8회가 예정됐다. 여기에 지방 공연 3~4회를 추가해 소나타 전곡 수와 같은 ‘32회’ 공연을 열 계획이다. 각 공연에선 소나타를 네 곡씩 연주한다. 서울 공연에선 32곡을 따로 완주할 예정이다.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

백건우의 음악 여정은 스승 빌헬름 켐프(1895~1991)와 닮았다. 켐프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연주로 20세기 피아노 음악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독일 피아니스트다. 80세를 넘겨서도 베토벤 작품을 끊임없이 연주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백건우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시적인 연주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켐프가 직접 들려준 베토벤은 남성적이라기보다는 시적이었다”며 “시계도 차지 말고 연주하라고 할 만큼 음악을 순수하게 대했다”고 설명했다.

백건우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의 베토벤에 대한 갈증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완주도 꼭 해보고 싶어요. 전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2020년이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데요. 그때까진 할 수 있겠죠? 하하.”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