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동숭로 TOM극장 1관에서 공연 중인 연극 ‘미친 키스’(사진)는 관객을 고독의 심연으로 이끈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극작·연출가 조광화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연극은 자기 존재의 불완전함과 충족되지 않는 인간관계에 불안을 느끼고 다른 이와 접촉하기를 갈망하지만 끝내 가닿지 못하는 비극을 그린다. 극의 테두리는 공허한 인간이 그것을 채우려는 열망에 불타다 다시 고독으로 회귀하고 마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서사다.
극은 고독이라는 만질 수 없는 개념을 ‘촉감’으로 구현한다. 맨발로 무대에 선 배우들을 통해서다. 연출가는 외로움과 열망이라는 잡히지 않는 개념의 현신(現身)이 돼야 하는 배우들의 모든 감각을 생생히 깨우기 위해 맨발 연기를 주문했다. “맨발은 어쩌면 알몸보다 더욱 인간을 예민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드라마의 골조를 휘감는 것은 막이 바뀔 때마다 흘러나오는 아코디언 연주다. 짙은 화장을 한 악사가 무대 오른편에서 연주하는 진득한 아코디언 소리는 희화적이면서도 처량하다. 막이 더해갈수록 미묘한 감정이 쌓인다. 무용 공연을 보는 듯 섬세한 안무도 볼거리다. 춤을 짠 안무가 심새인이 ‘히스’ 역으로 직접 출연해 수준 높은 몸짓을 선보인다.
등장인물들이 죽음과 이별 등 파멸로 치달을 때 무대에는 가장 밝은 조명이 비친다. 어찌 보면 지독한 역설이다. 극 전체를 감싸던 구슬픈 아코디언 연주 대신 신비롭고 희망찬 3박자 왈츠곡이 깔린다. 형식과 의미의 이질감은 최고치에 달한다. 비극성이 극대화되는 순간이다. 1998년 초연된 이 작품은 2008년 재연 이후 9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배우 조동혁과 이상이가 주인공 장정 역을 번갈아 맡는다. 만 19세 이상 볼 수 있다. 다음달 21일까지, 3만5000~5만원.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