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국토·도시 밸류 업'에 집중하라
‘장미대선’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후보들의 부동산 관련 공약도 뚜렷해졌다. 필자는 대선후보들이 선보일 부동산 공약 아젠다와 방향성에 대해 본란에서 두 차례 제안했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에 따라 다급하게 치러지는 대선인 만큼 준비 부족에 따른 공약 부실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후보들의 공약 내용을 살펴보니 당초 우려가 현실화된 느낌이다. 작년 총선에서 써먹은 ‘미세 정책’을 재탕해 내놓은 수준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국토·도시 정책 아젠다’는 아예 없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경우 한 가지가 눈에 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이다. 매년 10조원, 5년간 50조원의 공적 재원을 투입해 뉴타운·재개발사업이 중단된 전국 500여개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강력한 도시재생 정책이 시급한 지금, 시의적절한 공약이다. 하지만 과감하고 실효적 재생 방법이 제도화되지 못하면 허망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비전 없는 '재탕 공약' 일색

이번 대선에서는 대규모 개발사업 공약이 사라진 것도 큰 특징이다. 부동산 보유세 인상, 전·월세상한제 및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공공주택 공급 확대 등 과세 합리화와 주거복지 강화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차기 정부의 부동산시장은 가격 안정화와 지역·상품별 차등화 등의 추세가 뚜렷해질 전망이다.

대선후보들이 국토·도시 경쟁력 강화와 국민행복지수를 좌우할 핵심 정책은 망각하고, 단기적 부동산 시장 정책에만 매달리고 있어서 안타깝다. 차기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국토·도시의 밸류 업 정책’ 수립에 나서야 한다. 이는 주거복지 강화 못지않게 시급한 과제다. 우리 국토는 오랫동안 지속된 ‘무책임·무방비·무대책의 난개발’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전국 도시들도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다.

구닥다리 보존 논리들이 뒤섞인 무원칙 정책 탓에 공생과 친환경 도시 개발이 가로막혀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비전문성, 무사안일, 무소신도 한몫한다. 서울의 경우 한강변 개발과 도심 재개발·재건축 초고층화 제한이 대표적이다. 다른 도시들도 비슷하다. 지방과 소도시들은 정비·보존·디자인 등의 개념이 빠진 ‘무개념 개발 행위’로 기약 없이 황폐화되고 있다.

친환경·고밀화 도시 개발해야

더 늦기 전에 국토·도시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대도시는 ‘친환경 고밀화’, 지방·소도시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리디자인과 리모델링’으로 수정해야 한다. 그래야 대도시들은 도심 곳곳에 여유공지(공원)가 확보돼 도시가 숨을 쉴 수 있다. 이른바 ‘공생의 도시’다. 지방과 소도시는 무질서한 간판과 이정표, 무허가 식당, 지저분한 마을 등을 깔끔하게 리디자인(정리·정비)하는 게 최고의 개발이다. 여기에 지역 특성과 문화를 살린 ‘테마 개발’을 가미하면 전국이 재생된다.

선진국은 대도시, 지방, 농촌·산골마을 등 어딜 가나 정갈하고 단정하다. 낡은 집과 농로, 담벼락, 간판까지 세심하게 다듬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국토 재생은 큰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부동산시장 안정과 주거 복지도 보너스로 얻을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이 조금만 달라지면 가능하다.

박영신 한경부동산연구소장 겸 건설부동산 전문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