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백여현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 "하고싶은 일 하기위해 준비하니 흙수저도 인생역전 기회 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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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방 못구해 절에서 숙식해결 대학등록금도 스님이 내줘
길러준 작은아버지, 학업 도와준 스님 아버지
아버지 일찍 여의고 형편 어려워져 작은아버지댁서 살다 절에서 더부살이
각종 허드렛일하며 용돈벌이하고 돈없어 도시락 3개씩 싸들고 대학 다녀
'셀프 추천'으로 인생의 기회 잡다
한신증권에서 증권맨으로 사회생활 첫 발
8년간 한투파 안살림 맡다 CEO로 발탁…'소신 투자'로 3년 만에 업계 1위 올라서
인생에 한두 번은 성공의 기회 오죠…미리 준비해야 다가온 기회 잡을 수 있어
길러준 작은아버지, 학업 도와준 스님 아버지
아버지 일찍 여의고 형편 어려워져 작은아버지댁서 살다 절에서 더부살이
각종 허드렛일하며 용돈벌이하고 돈없어 도시락 3개씩 싸들고 대학 다녀
'셀프 추천'으로 인생의 기회 잡다
한신증권에서 증권맨으로 사회생활 첫 발
8년간 한투파 안살림 맡다 CEO로 발탁…'소신 투자'로 3년 만에 업계 1위 올라서
인생에 한두 번은 성공의 기회 오죠…미리 준비해야 다가온 기회 잡을 수 있어
국내 1위 벤처캐피털(VC) 업체인 한국투자파트너스(한투파)를 이끄는 백여현 대표의 트레이드마크는 ‘큰 덩치’(183㎝·106㎏)와 호탕한 웃음이다.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 ‘고생한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백 대표를 처음 만난 사람들이 그를 ‘금수저’ 출신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그래서 더욱 뜻밖이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중식당 칸지고고에서 백 대표가 들려준 그의 어린 시절은 피난민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읜 탓에 홀어머니와 함께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월세방을 마련할 돈이 없어 어머니와 ‘생이별’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탕수육은 ‘그림의 떡’ 같은 음식이었다. 백 대표는 “뒤늦게 맛본 탕수육의 강렬한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국내 최대 VC 수장이 된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했다.
백여현을 만든 세 명의 아버지
기다리던 탕수육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잔에 고량주를 가득 채웠다. 고량주 한 잔에 탕수육 한 점을 입에 털어넣은 백 대표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두 살 때 사고로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친척들 도움으로 서울 영등포에 방 하나 딸린 구멍가게를 차렸지만 장사는 그저 그랬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엔 월세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어려워졌어요. 결국 어머니는 서울 평창동에 있던 ‘청연사’라는 절에 들어가 사찰 일을 도우셨고, 저는 작은아버지 댁으로 들어갔습니다.”
민감한 사춘기 시절, 어머니와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그에게 극심한 불안감을 안겨줬다. 수시로 혓바늘이 돋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고, 덩달아 말수도 줄었다. 백 대표는 “돌이켜보면 우울증 초기증세였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엇나가지는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감히 비뚤어질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다”고 떠올렸다.
백 대표는 1982년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되면서 6년 가까이 떨어져 지낸 어머니와도 재회했다. 어머니가 머무르는 사찰에 백 대표가 ‘더부살이’를 한 것이다. 각종 허드렛일을 해주는 대가로 숙식은 물론 용돈까지 받았다.
어머니와의 재회, 그리고 자유로운 대학 생활은 우울감에 빠져있던 백 대표의 삶을 180도 바꿔놓았다. 선후배들과 어울리며 웃음도 되찾았다. 비록 밥 사먹을 돈이 없어 절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삼시세끼를 해결해야 했고, 당구와 오락 등 유흥도 즐기지 못했지만 하루하루가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저에게는 아버지가 세 명 있습니다. 낳아주신 아버지와 키워주신 작은아버지가 있죠. 작은아버지는 저를 돌보느라 결혼도 늦게 하셨어요. 세 번째 아버지는 스님입니다. 대학등록금부터 저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돌이켜보면 스님은 백여현이란 벤처기업에 투자한 ‘엔젤투자자’였습니다.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저를 키워준 절에 나가 아내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니, 스님이 투자 잘한 것 아닌가요? 하하.”
인생을 바꾼 ‘돌직구’ 보고서
칸지고고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누룽지탕이 나왔다. 뜨겁게 달궈진 뚝배기에 누룽지를 넣고 소스를 부으니 ‘치~익’ 소리가 났다. 화제는 어느덧 백 대표의 직장생활로 넘어갔다.
백 대표는 1987년 한신증권(한국투자증권의 전신)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증권맨이던 그가 벤처캐피털 대표로 변신하게 된 과정이 궁금했다. 백 대표는 “나에게 찾아온 두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1999년 동원그룹 경영관리실에서 자회사 관리 업무를 맡을 때였습니다. 당시 동원창업투자(현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창사 12년 만에 최대 흑자를 낼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죠. 하지만 제가 보는 시각은 달랐습니다. ‘동원창투는 미래가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썼죠. 창투사가 본연의 업무인 벤처투자는 안 하고 공모주 청약 등 재테크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거든요. 운 좋게 흑자를 냈더라도 오래갈 수는 없다고 보고 ‘돌직구’ 보고서를 쓴 겁니다.”
백 대표의 보고를 받은 동원그룹 경영진은 이듬해 동원창투를 전면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다.
백 대표는 동원창투의 재무 회계 인사 총무 등 투자를 제외한 모든 부문을 총괄하는 ‘넘버2’ 자리를 제안받았다.
8년 동안 한투파의 ‘안살림’을 맡은 백 대표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온 때는 2008년 말이었다. 당시 한투파는 운용자산(AUM) 규모로 벤처캐피털업계 20위 수준이었다. 최고경영자(CEO) 교체를 결정한 그룹 경영진은 CEO 후보 추천 작업을 백 대표에게 맡겼다. 백 대표는 승부수를 띄웠다. “한투파의 강점과 약점을 가장 잘 아는 내가 회사를 뜯어고치겠다”며 자신을 CEO로 추천한 것.
평소 백 대표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눈여겨본 경영진은 그를 CEO로 전격 발탁했다. 투자심사역이 아니라 관리직이 벤처캐피털 대표로 선임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백 대표는 오랜 기간 머릿속에 담아둔 계획을 순차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인력을 확충하고 교육에 집중 투자했다. 투자심사역이 대표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투자할 수 있도록 개별 투자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벤처캐피털은 단기 성과에 매달리면 안 된다”며 1년 단위 평가 방식을 3년 단위로 늘렸다. 직원들과 더 자주 소통하기 위해 회식 자리를 늘렸고, 자신의 스케줄도 전 직원에게 공개했다.
그러자 ‘대박’이 터지기 시작했다. 2011년 50억원을 투자한 카카오는 4년 뒤 650억원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백 대표가 취임한 지 3년 만인 2012년 한투파는 AUM 기준으로 업계 1위에 올랐다. 이후 1위 자리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성공한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유린기’(기름에 튀긴 닭고기)가 나왔다. 칸지고고의 대표 닭요리는 깐풍기가 아니라 유린기다. 입맛을 돋우는 독특한 간장소스 덕분이라고 한다.
유린기 한 점을 베어 문 백 대표가 대화 주제를 자식 교육으로 돌렸다. 자신의 교육철학이 어떤지 평가해달라고 했다. “큰아들이 행정고시를 준비한다기에 ‘대학 등록금을 안 주겠다’고 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한동안 고민하더니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고 하더군요. 그제야 ‘잘 생각했다.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제대한 뒤 복학 대신 레스토랑에서 일하도록 했어요. 3개월 동안 웨이터로 일하더니 ‘이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에 학비를 줬죠.”
백 대표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성공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힘줘 말했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백 대표의 교육철학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백 대표도 한투파 CEO 자리를 간절히 원했고, 그만큼 오랜 기간 준비했기 때문에 회사를 번듯하게 성장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조 흙수저’인 그에게 요즘 시대를 사는 ‘젊은 흙수저’들에게 들려줄 조언을 부탁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가진 게 없는 사람에게도 인생에 한두 번 기회는 옵니다. 저 역시 그동안 몇 차례 기회가 있었죠. 저는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오랜 기간 준비를 했습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은 끝났다’고 하지만 누가 압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기회를 잘 잡으면 흙수저도 얼마든지 금수저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 국내 1위 벤처캐피털 운용자산 올 1조 넘을 듯
한국투자파트너스는 국내외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국내 1위 벤처캐피털(VC) 업체다. 벤처펀드 운용자산(AUM) 규모는 9000억원에 이른다. 올해 국내 VC 중 최초로 AUM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올해 목표를 국내 1위를 넘어 아시아 최고 VC가 되는 것으로 잡았다. 지난해 10월 기준 한국투자파트너스가 해외 벤처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2852억원에 달한다. 해외 영토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호주 및 영국 바이오 회사에 투자하면서 국내 VC 중 최초로 영국계 기업에 투자했다.
올 들어서도 여러 해외 기업에 투자했다. 지난 2월 미국 인공지능(AI) 업체 두 곳에 투자한 데 이어 최근 자산운용사들과 손잡고 미국 학자금 대출 업체인 소파이(SoFi) 지분도 매입했다. ■백여현 대표의 단골집 칸지고고 광화문점
바삭한 탕수육, 비법 소스 유린기가 일품인 중식당
1997년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칸지고고는 교대 본점을 포함해 서울 10여곳에 가맹점을 두고 있는 중식당이다.
백여현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가 주로 찾는 광화문점 주변에는 대우건설, 금호그룹, 외교부 등 기업 및 정부기관이 즐비하다. 직장인은 물론 연예인, 정치인도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대표 요리는 단연 돼지고기 탕수육이다. 소스가 부어져 나오는 ‘부먹(부어 먹는)’ 방식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튀김옷의 바삭함은 유지된다. 닭 요리 중에서는 깐풍기보다 유린기가 더 잘나간다. 비법 간장으로 만든 유린기 소스 덕분이다. 짜지 않으면서 닭 튀김의 풍미를 끌어올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누룽지와 소스가 따로 나오는 누룽지탕도 이 집의 대표 메뉴로 꼽힌다. 달궈진 뚝배기에 누룽지를 넣은 뒤 소스를 부어 먹는다.
점심특선세트 1인당 1만9000원, 일반코스 2만5000~13만원, 돼지고기 탕수육(小) 2만3000원, 유린기(小) 2만8000원.
김태호/오상헌 기자 highkick@hankyung.com
그래서 더욱 뜻밖이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중식당 칸지고고에서 백 대표가 들려준 그의 어린 시절은 피난민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읜 탓에 홀어머니와 함께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월세방을 마련할 돈이 없어 어머니와 ‘생이별’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탕수육은 ‘그림의 떡’ 같은 음식이었다. 백 대표는 “뒤늦게 맛본 탕수육의 강렬한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국내 최대 VC 수장이 된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했다.
백여현을 만든 세 명의 아버지
기다리던 탕수육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잔에 고량주를 가득 채웠다. 고량주 한 잔에 탕수육 한 점을 입에 털어넣은 백 대표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두 살 때 사고로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친척들 도움으로 서울 영등포에 방 하나 딸린 구멍가게를 차렸지만 장사는 그저 그랬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엔 월세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어려워졌어요. 결국 어머니는 서울 평창동에 있던 ‘청연사’라는 절에 들어가 사찰 일을 도우셨고, 저는 작은아버지 댁으로 들어갔습니다.”
민감한 사춘기 시절, 어머니와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그에게 극심한 불안감을 안겨줬다. 수시로 혓바늘이 돋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고, 덩달아 말수도 줄었다. 백 대표는 “돌이켜보면 우울증 초기증세였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엇나가지는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감히 비뚤어질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다”고 떠올렸다.
백 대표는 1982년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되면서 6년 가까이 떨어져 지낸 어머니와도 재회했다. 어머니가 머무르는 사찰에 백 대표가 ‘더부살이’를 한 것이다. 각종 허드렛일을 해주는 대가로 숙식은 물론 용돈까지 받았다.
어머니와의 재회, 그리고 자유로운 대학 생활은 우울감에 빠져있던 백 대표의 삶을 180도 바꿔놓았다. 선후배들과 어울리며 웃음도 되찾았다. 비록 밥 사먹을 돈이 없어 절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삼시세끼를 해결해야 했고, 당구와 오락 등 유흥도 즐기지 못했지만 하루하루가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저에게는 아버지가 세 명 있습니다. 낳아주신 아버지와 키워주신 작은아버지가 있죠. 작은아버지는 저를 돌보느라 결혼도 늦게 하셨어요. 세 번째 아버지는 스님입니다. 대학등록금부터 저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돌이켜보면 스님은 백여현이란 벤처기업에 투자한 ‘엔젤투자자’였습니다.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저를 키워준 절에 나가 아내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니, 스님이 투자 잘한 것 아닌가요? 하하.”
인생을 바꾼 ‘돌직구’ 보고서
칸지고고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누룽지탕이 나왔다. 뜨겁게 달궈진 뚝배기에 누룽지를 넣고 소스를 부으니 ‘치~익’ 소리가 났다. 화제는 어느덧 백 대표의 직장생활로 넘어갔다.
백 대표는 1987년 한신증권(한국투자증권의 전신)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증권맨이던 그가 벤처캐피털 대표로 변신하게 된 과정이 궁금했다. 백 대표는 “나에게 찾아온 두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1999년 동원그룹 경영관리실에서 자회사 관리 업무를 맡을 때였습니다. 당시 동원창업투자(현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창사 12년 만에 최대 흑자를 낼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죠. 하지만 제가 보는 시각은 달랐습니다. ‘동원창투는 미래가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썼죠. 창투사가 본연의 업무인 벤처투자는 안 하고 공모주 청약 등 재테크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거든요. 운 좋게 흑자를 냈더라도 오래갈 수는 없다고 보고 ‘돌직구’ 보고서를 쓴 겁니다.”
백 대표의 보고를 받은 동원그룹 경영진은 이듬해 동원창투를 전면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다.
백 대표는 동원창투의 재무 회계 인사 총무 등 투자를 제외한 모든 부문을 총괄하는 ‘넘버2’ 자리를 제안받았다.
8년 동안 한투파의 ‘안살림’을 맡은 백 대표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온 때는 2008년 말이었다. 당시 한투파는 운용자산(AUM) 규모로 벤처캐피털업계 20위 수준이었다. 최고경영자(CEO) 교체를 결정한 그룹 경영진은 CEO 후보 추천 작업을 백 대표에게 맡겼다. 백 대표는 승부수를 띄웠다. “한투파의 강점과 약점을 가장 잘 아는 내가 회사를 뜯어고치겠다”며 자신을 CEO로 추천한 것.
평소 백 대표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눈여겨본 경영진은 그를 CEO로 전격 발탁했다. 투자심사역이 아니라 관리직이 벤처캐피털 대표로 선임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백 대표는 오랜 기간 머릿속에 담아둔 계획을 순차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인력을 확충하고 교육에 집중 투자했다. 투자심사역이 대표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투자할 수 있도록 개별 투자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벤처캐피털은 단기 성과에 매달리면 안 된다”며 1년 단위 평가 방식을 3년 단위로 늘렸다. 직원들과 더 자주 소통하기 위해 회식 자리를 늘렸고, 자신의 스케줄도 전 직원에게 공개했다.
그러자 ‘대박’이 터지기 시작했다. 2011년 50억원을 투자한 카카오는 4년 뒤 650억원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백 대표가 취임한 지 3년 만인 2012년 한투파는 AUM 기준으로 업계 1위에 올랐다. 이후 1위 자리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성공한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유린기’(기름에 튀긴 닭고기)가 나왔다. 칸지고고의 대표 닭요리는 깐풍기가 아니라 유린기다. 입맛을 돋우는 독특한 간장소스 덕분이라고 한다.
유린기 한 점을 베어 문 백 대표가 대화 주제를 자식 교육으로 돌렸다. 자신의 교육철학이 어떤지 평가해달라고 했다. “큰아들이 행정고시를 준비한다기에 ‘대학 등록금을 안 주겠다’고 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한동안 고민하더니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고 하더군요. 그제야 ‘잘 생각했다.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제대한 뒤 복학 대신 레스토랑에서 일하도록 했어요. 3개월 동안 웨이터로 일하더니 ‘이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에 학비를 줬죠.”
백 대표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성공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힘줘 말했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백 대표의 교육철학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백 대표도 한투파 CEO 자리를 간절히 원했고, 그만큼 오랜 기간 준비했기 때문에 회사를 번듯하게 성장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조 흙수저’인 그에게 요즘 시대를 사는 ‘젊은 흙수저’들에게 들려줄 조언을 부탁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가진 게 없는 사람에게도 인생에 한두 번 기회는 옵니다. 저 역시 그동안 몇 차례 기회가 있었죠. 저는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오랜 기간 준비를 했습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은 끝났다’고 하지만 누가 압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기회를 잘 잡으면 흙수저도 얼마든지 금수저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 국내 1위 벤처캐피털 운용자산 올 1조 넘을 듯
한국투자파트너스는 국내외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국내 1위 벤처캐피털(VC) 업체다. 벤처펀드 운용자산(AUM) 규모는 9000억원에 이른다. 올해 국내 VC 중 최초로 AUM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올해 목표를 국내 1위를 넘어 아시아 최고 VC가 되는 것으로 잡았다. 지난해 10월 기준 한국투자파트너스가 해외 벤처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2852억원에 달한다. 해외 영토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호주 및 영국 바이오 회사에 투자하면서 국내 VC 중 최초로 영국계 기업에 투자했다.
올 들어서도 여러 해외 기업에 투자했다. 지난 2월 미국 인공지능(AI) 업체 두 곳에 투자한 데 이어 최근 자산운용사들과 손잡고 미국 학자금 대출 업체인 소파이(SoFi) 지분도 매입했다. ■백여현 대표의 단골집 칸지고고 광화문점
바삭한 탕수육, 비법 소스 유린기가 일품인 중식당
1997년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칸지고고는 교대 본점을 포함해 서울 10여곳에 가맹점을 두고 있는 중식당이다.
백여현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가 주로 찾는 광화문점 주변에는 대우건설, 금호그룹, 외교부 등 기업 및 정부기관이 즐비하다. 직장인은 물론 연예인, 정치인도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대표 요리는 단연 돼지고기 탕수육이다. 소스가 부어져 나오는 ‘부먹(부어 먹는)’ 방식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튀김옷의 바삭함은 유지된다. 닭 요리 중에서는 깐풍기보다 유린기가 더 잘나간다. 비법 간장으로 만든 유린기 소스 덕분이다. 짜지 않으면서 닭 튀김의 풍미를 끌어올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누룽지와 소스가 따로 나오는 누룽지탕도 이 집의 대표 메뉴로 꼽힌다. 달궈진 뚝배기에 누룽지를 넣은 뒤 소스를 부어 먹는다.
점심특선세트 1인당 1만9000원, 일반코스 2만5000~13만원, 돼지고기 탕수육(小) 2만3000원, 유린기(小) 2만8000원.
김태호/오상헌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