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처럼 이어지는 메디나 골목길을 지나가는 모로코 여인.
미로처럼 이어지는 메디나 골목길을 지나가는 모로코 여인.
아프리카이면서도 중동과 유럽의 분위기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신비한 땅 모로코. 그중에서도 모로코 왕국의 수도였고 세계 최초의 대학이 있던 고도(古都) 페스(Fes)는 중세시대부터 번성했던 전통의 땅이다. 이곳은 9000개가 넘는 골목으로 유명해진 메디나와 가죽 염색 공장 테너리 등 볼거리가 풍성해 여행자들의 발목을 잡는다. 놀라운 풍경이 연속해서 펼쳐지는 모로코의 페스를 찾아 이국의 낭만적 정취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오랜 전통이 살아 있는 페스

모로코 제3의 도시 페스는 사막의 도시 ‘마라케시’와 함께 모로코를 대표하는 여행지다. 오랜 전통이 살아있는 페스의 구시가지인 ‘메디나’는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을 정도로 여행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곳이다. 좁은 흙담의 골목길이 어찌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그야말로 거미줄 같은 미로여서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같은 골목이 9000여개나 되기 때문이다. 좁다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온 천지가 바자르(시장)고, 주택가이고, 모스크(사원)이자 기념품 가게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금세 길을 잃고 만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도 소용이 없다. 미로 같은 골목을 걷다 보면 중세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메디나를 정신없이 둘러보다 좁은 골목길에서 당나귀를 끌고 오는 무리와 마주쳤다. 등을 맞대고 간신히 길을 비켜주다보면 이 모든 것이 여행의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천연 가족염색 공장 ‘테너리’

페스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가죽 염색공장.
페스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가죽 염색공장.
메디나에서도 볼거리가 많고 대표적인 관광지는 테너리라 불리는 천연 가죽 염색 공장이다. 특유의 이색적인 풍경 때문에 전 세계 사진가들이 출사 명소로 꼽는 곳이기도 하다. 메인 테너리를 중심으로 작은 규모의 테너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테너리가 어디인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아이들이 달려들어 “테너리” “테너리”를 외치며 가는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 따라붙는다. 팁을 바라고 가이드를 자청한 것이지만 천진한 아이들의 눈빛을 보니 미워할 수가 없다. 아이들 중 한 명이 박하향이 나는 허브 잎을 주면서 코에 대고 가라고 한다. 테너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냄새에 대한 배려인 듯하다. 역시나 소문대로 냄새가 지독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모습에 놀라지만 가죽 염색을 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염색 처리 과정에 비둘기 배설물을 사용하는 것도 이채로웠다. 형광처럼 빛나는 노란색을 빼내기 위해 고가의 사프란을 사용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가죽 염색 과정은 전부 수작업이다. 멋진 풍광을 한눈에 담으려면 높은 건물로 향해야 한다. 옥상에 올라 밑을 내려다보니 색색의 염색 약품이 들어 있는 수많은 둥근 통과 가죽 염색 공장의 풍경은 마치 화가의 팔레트처럼 보였다.

로마 시대 유적 있는 볼루빌리스
페스 외곽 볼루빌리스의 고대 유적지가 남아있는 언덕.
페스 외곽 볼루빌리스의 고대 유적지가 남아있는 언덕.
페스는 1925년까지 모로코 수도였기에 아직도 모로코의 정신과 문화의 중심지다운 면모가 곳곳에 남아 있다. 여기저기 보석처럼 박혀 있는 모스크나 이슬람 교육기관인 메드레세의 화려한 장식이 돋보인다. 아라베스크 문양 등에서 디자인의 힌트를 얻기 위해 많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앞다퉈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시내 외곽 언덕 위에는 고대의 왕궁 흔적도 남아 있다. 페스에서 조금 떨어진 ‘볼루빌리스’에는 로마 시대의 유적들도 잘 남아 있어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이른 아침에 왕궁 흔적이 남아 있는 언덕 위에 올랐다. 시야가 확 트인다. 책 한 권 들고 산책 나온 듯한 젊은이가 이 폐허 사이를 걸으며 혼자서 뭔가를 중얼거린다. 가슴에 담아둔 시(詩)라도 읊고 있는 것일까. 메디나 구시가가 내려다보이는 왕궁은 폐허가 돼 있었고 쓸쓸하면서도 고적했다.

여행 정보

구시가 성채 앞의 바자르(시장)풍경.
구시가 성채 앞의 바자르(시장)풍경.
한국에서 모로코로 바로 가는 항공편은 없다. 두바이, 이스탄불, 또는 유럽을 거쳐 카사블랑카나 라바트, 마라케시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페인 남단에서 배를 타고 탕헤르로 들어갈 수 있다. 모로코는 다른 이슬람권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분위기로 도처에서 여행자들을 쉽게 접할 수 있고 현지인이 친절하고 온순한 편이기는 하지만 여성 혼자서 여행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모로코 요리는 다채롭지만 각종 빵들을 제외하면 우리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다.

대표적인 전통음식으로는 육고기 또는 생선으로 만든 ‘타진’이 있다. 음식을 만들 때 사프란, 민트, 올리브 등을 비롯한 각종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다. 메디나 지역에도 숙소들이 골목마다 자리하고 있다. 숙소들이 낡고 시설에 비해 비싼 편이지만 관광지와 멀지 않아 배낭여행객들이 선호한다.

페스(모로코)=박하선 여행작가 hotsunny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