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왼쪽부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23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 TV 토론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왼쪽부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23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 TV 토론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책 토론은 없이 네거티브 공방과 말꼬리 잡기만 난무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3일 주최한 TV 토론회의 주제는 외교·안보 및 대북정책과 권력기관 및 정치 개혁이었다. 하지만 후보들은 정책 토론보다는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아 공박하기에 바빴다. 주제에서 벗어난 네거티브 공방으로 시간을 보냈다. 후보들 스스로가 상대방을 향해 “실망스럽다” “초등학생 토론 같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문·유, 서로 말 끊으며 공방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2007년 11월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투표에 관해 질문했다. 유 후보는 “투표 전에 북한 김정일에게 물어봤냐”고 했다. 문 후보는 “여러 번 말했듯이 사실이 아니다”고 답했다.

유 후보가 “문 후보님”이라며 답을 끊자 문 후보는 “끊지 마세요”라며 말을 이어갔다. 문 후보는 “유 후보를 합리적·개혁적 보수라고 느껴 왔는데 또다시 구태의연한 색깔론을 제기해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문 후보는 “유 후보는 토론 태도를 바꿔야 한다”며 “상대가 인정할 때까지 말꼬투리를 잡는 것은 토론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유 후보는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북한 인권,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한·미 동맹 등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왜 색깔론이냐”며 “문 후보의 북한 인권결의안 발언이 거짓말로 드러나면 후보에서 사퇴할 용의가 있느냐”고 따졌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유 후보에게 “색깔론을 극복하는 것이 보수가 새롭게 태어나는 가장 우선적인 기준”이라며 “(유 후보 발언은) 전형적인 안보장사”라고 비판했다. 이에 유 후보는 “심 후보가 북한에 대해선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줄 알았다”며 실망스럽다는 뜻을 나타냈다. 심 후보는 문 후보에 대해서도 “‘송민순 문건’에 대해 당당하지 못하고 모호한 태도를 유지해 정쟁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주제 벗어난 네거티브 공방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네거티브 공방으로 토론을 끌고 갔다. 홍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가 640만달러를 받은 것에 대해 문 후보는 그런 일이 없다고 했는데 거짓말”이라고 했다. 홍 후보는 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과 관련해서도 문 후보는 거짓말을 했다”며 “문 후보가 여섯 가지 거짓말을 했다”고 지적했다.

문 후보는 “홍 후보 질문엔 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며 “노 전 대통령 가족이 (돈을) 받았다는 것은 확인됐지만 노 전 대통령이 받았다는 것은 확인된 바 없다”며 “그 사실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검찰이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토론이 말꼬리 잡기로 흐르자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토론을 보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안 후보 본인도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를 거론했다. 안 후보는 문 후보에게 “제가 갑철수냐, 안철수냐”고 물었다. 문 후보는 “무슨 말씀이냐”고 했다. 문 후보가 이해를 못하자 안 후보는 세 차례에 걸쳐 “갑철수냐, 안철수냐”고 했다. ‘안철수 갑질’ 공세를 강화하라는 내용의 민주당 전략기획팀 명의 문건을 언급한 것이다. 주제에서 벗어난 공방이 계속되자 사회자가 “이 자리는 외교·안보 정책을 토론하는 자리”라며 제지했다.

안 후보는 또 문 후보에게 “제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인가”라고 물었다. 문 후보는 “항간에 그런 말이 있다”고 답했다. 안 후보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정권이 연장되면 안 된다는 결심에 후보를 양보했는데도 MB 아바타인가”라고 추궁하자 문 후보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로 “유치하다” 지적

정책과 무관한 공방이 지속되자 후보들 스스로 “실망스럽다” “안타깝다” “유치하다”는 말을 쏟아냈다. 안 후보는 유 후보가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난 초대 평양대사로 가겠다”고 한 발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아우, 유 후보님 실망입니다”라고 했다. 홍 후보는 “지엽 말단적인 일을 갖고 갑론을박을 해 안타깝다”며 “초등학생 감정 싸움인지 대통령 후보 토론인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홍 후보가 “노무현 정부에서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대한 사면을 두 번 해 줬는데 맨입으로 해 줬느냐”고 하자 “유치한 토론 태도 아니냐”고 했다. 이에 홍 후보는 “문 후보와 안 후보가 토론할 때가 유치했다”고 비꼬았다.

유승호/김기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