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사태를 두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드러난 전형적 사례’라고들 말한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된 원인도 거기에 있다. 자연스런 귀결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주요 대선후보들도 비슷한 생각인 듯하다. 엊그제 열린 TV 토론에서 5명의 후보가 일제히 청와대,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개혁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후보들이 쏟아내는 공약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이들이 대통령 권한을 축소할 생각이 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마땅한 재원 마련 방안이 없거나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공약을 남발하며 이것저것 다 해주겠다는 식이다. 후보들이 내건 공약을 다 이행하려면 제왕적 대통령으로는 모자라고, 메시아와 같은 대통령이 나와야 할 판이다.

기초연금 월 30만원으로 인상, 월 10만~15만원 아동수당 신설, 국공립유치원 이용률 40%까지 확대,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청년구직 촉진 수당 등 복지공약들은 재원 마련 방안이 불투명한 대표적 사례다. 10조원이 넘는 일자리 추경을 편성하겠다든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에서 3%로 증액하고 병사 월급을 올려주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새만금 개발이나 도시재생사업, 광역급행열차 등 대형 인프라 공약들도 그대로 될 것이라고 믿는 이는 거의 없다.

게다가 공약 중 상당수는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과연 몇 개나 국회를 통과할지 알 수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회는 여소야대 상황이 되는 데다 국회 선진화법이라는 험난한 산까지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자는 후보들이 정작 제왕적 대통령조차 하기 힘든 공약을 두고 경쟁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득표를 위해 눈 가리고 아웅 하며 국민을 속이는 일과 다름 없다. 5명의 주요 대선후보는 모두 집권하면 개헌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혹시 이들 모두 자신까지는 제왕적 대통령으로서 맘껏 권한을 누리고, 권한 축소는 다음 대통령부터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