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송인서적 회생, 출판유통 선진화 계기 삼아야
올해 초 부도난 대형 서적도매업체인 송인서적이 회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매각을 전제로 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통해서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는 온라인서점을 운영하는 인터파크다. 송인서적은 지난 10일 기업회생절차를 위한 새 이사진을 꾸린 데 이어 24일 서울회생법원에 개시를 신청했다.

회생 추진 과정이 상당히 극적이다. 부도 직후 피해를 입은 출판사들로 채권단이 꾸려졌을 때만 해도 송인서적의 운명은 회생보다는 청산으로 기울었다. 여기에는 ‘괘씸의 정서’가 크게 작용했다. 송인서적은 1998년 부도났을 때 출판계와 정부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그럼에도 이렇다 할 변화 없이 구태를 반복하다 다시 부도를 맞아 수많은 거래업체에 큰 피해를 입힌 회사 경영진에 대한 출판계의 원성이 높았다. 특히 대형 출판사에 비해 공급률과 수금률 등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감내한 중소 출판사 대표들의 분노가 컸다.

하지만 곧 현실론이 대두됐다. 국내 단행본 출판도매시장은 북센과 송인서적이 양분해 왔다. 전국 2000여개 출판사와 1000여개 서점을 연결하는 송인서적의 유통망이 끝내 사라지면 북센의 독과점 심화와 출판도매시장 위축이 불보듯 뻔하다. 출판계가 원치 않는 상황이다. 다행히도 송인서적 실사 결과 매출총이익률이 10%대를 유지하는 등 현금흐름이 비교적 양호했다.

개별 출판사들로서도 청산 과정에서 우선순위에 밀려 한 푼도 못 건지는 것보다는 대폭적인 채무 탕감을 감수하더라도 일단 살려 놓고 후일을 도모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후 금융권 워크아웃이 무산되며 송인서적 회생은 물 건너가는 듯했지만 출판사 채권단과 인수 의사를 밝힌 인터파크는 ‘선(先) 기업회생절차 개시, 후(後) 매각’이란 묘수를 찾아냈다.

출판계에선 송인서적 회생을 국내 출판 생태계의 가장 약한 연결고리인 도매 유통을 선진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존 유통망의 단순한 복구는 곤란하다. 서적 도매는 위탁 방식이다. 출판사가 도매업체에 책을 보내면 도매업체가 알아서 전국 서점에 책을 배포하고, 알아서 판매분을 회수해 출판사에 결제해 준다. 출판사는 판매대금을 보통 3~4개월짜리 어음으로 받는다. 송인서적은 7개월짜리도 끊어 줬다. 그것도 문방구 어음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도매업체에 보낸 책들이 어느 지역 서점에서 얼마나 팔렸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판매정보시스템이 부재한 데다 도매업체와 서점들이 영업기밀을 이유로 정보 공개를 꺼리는 탓이다. 그러다 보니 정확한 판매 내역에 따라 이뤄져야 할 결제가 어림짐작으로, 그것도 출판사 파워나 정실(情實)에 따라 차별적으로 이뤄지기 일쑤다.

변화와 혁신은 이런 전근대적이고 불투명한 거래관행의 개선에서 시작된다. 인터파크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출판사 대상 비전 설명회에서 현금결제 시행과 거래 투명성 확보를 우선적으로 약속한 이유다. 출판사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된다. 판매정보시스템 구축을 위해선 서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지역 서점 경영자들에게 판매 정보 공유와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다양한 마케팅으로 매장을 활성화하고 매출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충분히 제시해야 한다. 출판계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송태형 문화부 차장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