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도의 크고 작은 나라의 모든 왕자들은 왕위에 오르기 위한 통과의례로 이마에 물을 붓는 관정식(灌頂式)을 치렀다. 카필라국 왕자 출신인 붓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신은 제왕(帝王·정치적 지도자)이 아니라 법왕(法王·정신적 지도자)을 지향했다. 그래서 관정식은 구룡(九龍)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됐다.
구룡이란 중국식 표현으로 바꾼다면 구주(九州)라고 하겠다. 따라서 구주란 전국토를 가리킨다. 인도 전역의 9대 강물을 입에 가득 머금은 채 아홉 마리의 용이 날아왔다. 관정식을 마친 후 그 물은 다시 성수(聖水)가 돼 인도 전역을 적시며 굽이굽이 흘렀다. 강물이 마른 땅을 적시는 것처럼 법왕의 가르침은 메마른 마음땅(心地)을 적셨다. 한반도의 2561번째 ‘부처님오신날’ 관정식은 4대 강물을 합수(合水)한 물로써 사분오열된 번뇌불길을 식혀야겠다.
이 게송은 원오극근(悟克勤, 1063~1125) 선사의 ‘부처님오신날’ 축시(祝詩)의 일부다. 스님은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 북서쪽 펑저우(彭州)의 낙(駱)씨 집안 출신이다. 송대(宋代) 임제종을 대표하는 선지식으로 선종(禪宗)의 최고 명저로 평가되는 《벽암록》을 남겼다.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