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초상 역의 리아나 알렉산얀(오른쪽)과 핑커톤 역의 레오나르도 카이미가 노래하고 있다. 수지오페라단 제공
초초상 역의 리아나 알렉산얀(오른쪽)과 핑커톤 역의 레오나르도 카이미가 노래하고 있다. 수지오페라단 제공
프리마 돈나(prima donna: 오페라 주역을 맡은 여성 성악가)에 의한, 프리마 돈나만의 절정의 무대가 펼쳐졌다. 지난달 28~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수지오페라단의 ‘나비부인’ 공연에서였다.

설렘과 절망을 오가는 사랑의 모든 감정이 여주인공 초초상(나비부인)을 맡은 소프라노 리아나 알렉산얀의 목소리와 몸짓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토록 기다리던 남편 핑커톤이 일본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르는 아리아 ‘어느 갠 날’에선 벅찬 환희가 아름다운 선율과 정교한 손동작을 타고 번져 나갔다.

자코모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남편을 향한 처절한 기다림과 절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어느 오페라보다 프리마 돈나의 역할이 중요하다. 애절한 빛깔의 고음역대 목소리는 물론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 연기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다. 이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극 전체의 힘이 빠지고 만다. 라 스칼라 등의 무대에서 ‘세계 최고의 나비부인’으로 평가받았던 알렉산얀은 한국 무대에서도 이 둘을 모두 훌륭히 소화해냈다. 핑커톤에게서 버림받은 것을 깨닫고 미친 듯이 절규하는 장면에선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비비언 휴잇의 연출 감각도 돋보였다. 그의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수성은 나비부인의 고전적인 매력에 더해져 기존 공연들과 다른 느낌을 줬다. 특히 나비부인의 오랜 기다림에 숨겨진 여성 특유의 강인함을 더 돋보이게 한 것은 작품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볼 수 있다.

무대 디자인도 뛰어났다. 수지오페라단은 세계 3대 오페라 축제 푸치니페스티벌의 ‘나비부인’ 제작사에서 무대부터 의상, 소품 등을 그대로 가져왔다. 큰 돌덩이와 기둥 등은 장면마다 바뀌는 조명과 함께 초초상의 심적인 변화를 적절하게 보여줬다. 동양적 철학과 색채도 표현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거운 주제지만 극 중 작은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초초상의 아들을 맡은 아역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아들은 남편을 맞이하기 위해 꽃으로 집안을 장식하는 어머니의 옆에서 꽃가루를 신기한 듯 매만지기도 했다. 그의 앙증맞고 천진난만한 몸짓에 관객들은 미소를 지었다. 비극은 이런 기쁨까지 무너지는 데서 더 극대화되는 법. 나비부인의 슬픔은 아들과의 즐거운 한때와 대비되며 관객들에게 더욱 충격적이고 아프게 다가갔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