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방송을 통해 알려진 김용창의 이야기는 이렇다. 김용창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일을하며 돈을 모았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지만 모두 가족들을 위해 고향집으로 보내며 소식도 함께 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소식이 뚝 끊겼다. 김용창의 가족은 1945년 4월 그가 감옥해서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일본 경찰은 김용창이 절도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 밝혔지만 실상은 달랐다. 항일 활동 때문이었다.
1944년 5월 김용창은 자신이 근무하던 경성보험관리소 1층 화장실 판자벽에 조선의 독립에 대한 염원과 일본 징병제를 비판하는 글을 쓰다 잡혔다. 결국 1944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과 일본 천왕 모독죄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당시 일본 경찰은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조차 숨겨 그동안 그가 항일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 50년 뒤에야 경성지방법원 판결문이 공개돼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고 김용창의 고향에 그의 흉상이 세워지는 등 뒤늦게 조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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