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삼세판 증후군
현대 사법제도의 근간인 3심제(三審制)는 근대 유럽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1000여년 전부터 3심제가 있었다. 1047년 고려 문종은 ‘사수삼복계법(死囚三覆啓法)을 도입해 사형수에 한해 3복(3심)을 거치도록 했다. ‘인명은 소중하고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3복제는 조선으로 이어져 태종 때 《경제육전》(1397년), 성종의 《경국대전》(1485년)에 담겼다.

그렇다고 고려·조선에서 인권이 보장됐다고 보긴 어렵다. 신문고가 있었지만 널리 활용되지 못했고, 왕명에 따른 의금부 특수사건은 단심제였다. ‘네 죄를 알렸다’는 원님재판에다 연좌제로 범죄자의 처자를 노비로 만드는 일도 허다했다. 향리들의 전횡까지 더해져 민초의 삶은 늘 고달팠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억울함의 역사가 뿌리 깊어서일까. 오늘날에도 ‘사법 불복(不服)’이 두드러진다. ‘2016 사법연감’에 따르면 형사재판의 경우 1심 합의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비율이 2006년 51.9%에서 2015년 68.1%로 뛰었다. 2심 상고율도 30~40%에 이른다. 심지어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범들도 2심 감형에도 모두 대법원에 상고했다. ‘밑져야 본전’이란 심리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재판은 ‘웬만하면 삼세판’이 돼버렸다. 한 전직 대법원장은 “고려가 망한 이유 중에 하나가 과도한 사법비용”이라며 우리 사회의 삼세판 증후군을 우려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유독 숫자 3을 좋아해서일까. 승부는 적어도 세 번은 겨루고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재판 불복의 이면에는 사법 불신이 깔려 있다. ‘전관 변호사’를 잘 썼느냐에 따라 판결 결과가 달라진다고 믿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민사재판의 경우 항소심서 4건 중 1건이 뒤집히고 대법원에 가면 다시 7%의 결과가 바뀐다. 뭐든지 할 수만 있다면 대법원까지 끌고간다. 그 결과 대법관 1인당 하루 8건, 연간 약 3000건을 처리해야 할 정도다. 상고허가제나 상고법원(간단한 상고사건 전담) 도입이 대법원의 숙원인 이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3심제로도 만족 못 하면 헌법재판소로 달려간다. 한 해 약 2000건의 위헌심판, 헌법소원이 쏟아진다. 실질적으론 3심이 아니라 4심제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어제 헌재가 결혼 전에 산 TV 모니터를 홧김에 부순 남편에게 재물손괴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발표해 눈길을 끈다. 다툼의 자초지종은 차치하고, 이런 일까지 헌재로 간다니 놀랍다. 승복 못 하는 사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점점 커져간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