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정책수단 없어 답답"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BOJ) 총재(사진)가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끝낼 마땅한 정책 수단을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토로했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 6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관련 행사에서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해소를 위해 악전고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를 문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중앙은행 총재가 직접 나서 주요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금융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솔직하게 밝힌 것이다. 일본은행은 2013년 4월 이후 4년 넘게 양적완화와 금리인하를 합친 통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효과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올 들어서 0.2%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년 가까이 임금 정체와 물가 하락이 이어진 까닭에 “물가가 조만간 떨어질 것”이라는 디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만연한 점이 경기부양책의 효과를 약화시킨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구로다 총재는 일본 기업의 해외 생산 확대 등으로 엔화 약세에 따른 수출 증가 효과도 예전 같지 않다고 언급하는 등 전통적인 경제정책이 효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디플레이션 기질이 기업과 가계에 일단 스며들면 그것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물가상승률 0%대를 벗어나기 위해 4년째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도전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국가들이 일본과 같은 문제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선 인플레이션 기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