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 반도 서쪽 울라 지역 신전에서 출토된 높이 185㎝ 가량의 남성상. 연합뉴스
아라비아 반도 서쪽 울라 지역 신전에서 출토된 높이 185㎝ 가량의 남성상. 연합뉴스
6000년 된 석상·카바 신전 문…찬란한 사우디 문명의 유혹
2010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 남서쪽 마가르에서 주민이 낙타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우물을 파다 돌로 만든 칼과 가락바퀴, 갈판, 화살촉 등 신석기시대 도구를 대량으로 발견했다. 발굴조사 결과 양 염소 개 타조 매 물고기 말 등 다양한 동물 상도 확인됐다. 출토품은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을 통해 기원전 8110년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마가르문명’에서 나온 길이 1m가량 말 모양 석상은 말의 가축화가 5500년 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결정적 증거로 평가됐다. 말 머리 부위에 확연한 굴레 형태는 말을 사육한 증거다.

기원전 4000년께의 사람 모양 석상
기원전 4000년께의 사람 모양 석상
기원전 100만년 전부터 20세기까지 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특별전 ‘아라비아의 길-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가 9일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한다. 아라비아 문화를 국내에 소개하는 첫 전시이자, 사우디아라비아가 2010년부터 열고 있는 해외 순회전의 열두 번째 전시다. 사우디의 13개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466점이 건너왔다.

알리 알갑반 사우디 관광국가유산위원회 부위원장은 전시 개막에 앞서 8일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세계인이 사우디를 산유국으로만 알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동서 교류의 핵심이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사우디는 열린 문화전통을 오랫동안 간직한 곳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 제목인 ‘아라비아의 길’은 아라비아반도가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교차로였다는 데 주목한 결과다. 선사시대에 아프리카 초기 인류가 이곳을 거쳐 세계로 퍼졌다. 또한 아라비아는 유향과 몰약이 유통되는 중요한 경로였다. 이슬람시대 이후 그 길을 따라 수많은 순례자가 메카로 모여들었다.

전시는 이런 흐름에 따라 아라비아의 역사를 다섯 가지 주제로 압축한다. 1부 ‘아라비아의 선사시대’에 이어 2부 ‘오아시스에 핀 문명’은 아라비아만 연안을 중심으로 ‘딜문(Dilmu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고대문명의 정체를 밝힌다. 3부 ‘사막 위의 고대도시’에서는 기원전 1000년 무렵을 지나면서 생겨난 향 교역로를 따라 번성한 아라비아 북서부의 타이마, 울라, 까르얏 알파우 등의 고대도시를 소개한다. 4부 ‘메카와 메디나로 가는 길’은 6세기 이후 이슬람교 확산에 따라 새로 형성된 순례길을 조명한다. 마지막 5부 ‘사우디 왕국의 탄생’에서는 1932년 사우디 초대 국왕으로 등극한 압둘 아지즈 왕의 유품과 19세기 공예, 민속품 등을 통해 사우디 왕국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사람 모양의 석상 3개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기원전 4000년께 만들어진 이 석상은 기다란 직사각형 돌에 눈과 코를 추상화처럼 간략하게 새기고, 허리띠와 팔을 부각했다. 지금은 황량한 사막이지만 1만년 전쯤 아라비아는 수목이 무성하고 깊은 호수와 비옥한 습지가 있는 땅이었다. ‘초록의 아라비아’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지중해 연안 근동 지역에서 사람들이 건너와 다양한 도구와 무기를 제작했다고 한다. 구석기·신석기시대의 찍개, 긁개, 돌화살촉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기원전 4~3세기 제작된 높이 약 185㎝ 남성상 3개도 주목된다. 아라비아 풍경을 배경으로 전시된 남성상은 아라비아반도 북서쪽 울라 지역 신전에서 출토됐다. 얼굴과 손, 발 부분이 떨어져 나갔지만 울퉁불퉁한 근육이 잘 표현됐다.

특히 인상적인 유물은 메카의 카바 신전에 있던 문이다. 오스만 제국 술탄인 무라드 4세(재위 1623~1640)가 헌정한 것으로, 나무로 만든 높이 3.4m, 폭 1.8m 문에 이스탄불에서 가져온 세밀한 장식의 은판을 붙였다. 1947년까지 약 300년간 신전 문으로 사용되다가 교체됐다고 한다. 장상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은 “카바 신전 문은 이슬람의 상징과도 같은 문화재”라며 “수많은 이슬람교도가 이 문을 보러 메카에 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위대함이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선사시대의 다양한 석기와 토기, 무기류, 비석, 금붙이, 동전, 다양한 문자로 새겨진 묘비, 생활용품과 압둘 아지즈 왕의 옷 등도 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8월27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6000원, 중고·대학생 5000원, 초등학생 4000원.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