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논점과 관점] '자기비하 최면'에 빠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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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더 멀어진 내집 마련의 꿈’ ‘소득 대비 집값 역대 최고’….
며칠 전 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국토교통부의 ‘2016년 일반가구 주거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이 5.6으로 나와 조사를 시작한 2006년 이후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한푼도 쓰지 않고 돈을 모아도 내집을 장만하려면 5.6년이 걸린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헬조선!”을 떠올린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PIR은 보통 중위 집값을 중위 소득으로 나누어 산정한다. 국내에서 PIR을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곳은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연구원, 국민은행, 한국주택금융공사 등이다. 문제는 조사기관마다 소득이나 집값을 산정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데 있다. 결과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국토부가 인용한 국토연구원 자료에서는 PIR이 2006년 4.2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반면 국민은행의 PIR은 2008~2014년 4.9~5.2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2015년(5.3), 2016년(5.7) 두 해에 크게 올랐다.
집값 올라도, 내려도 '헬조선' 타령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PIR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1991~2007년 통계를 보면 한국과 일본의 PIR은 장기적으로 하향곡선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캐나다가 장기 상승세를 보이며 2000년을 전후해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2014년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산출한 PIR 역시 장기 하락세다. 1986년을 100으로 봤을 때 2007년 43.7, 2013년 38.5 등으로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2015년과 2016년에 PIR이 높아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이전 기간 PIR 추이는 조사기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도 특정 기관의 자료를 특정 기간만 잘라서 PIR이 계속 최악으로 치닫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문제다.
재밌는 것은 PIR에 큰 변화가 없던 2012~2014년에는 이른바 ‘하우스 푸어’ 이슈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됐다는 점이다. 2014년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이 나온 배경이기도 했다. 집값이 떨어지면 빚을 내 집을 산 서민들이 ‘하우스 푸어’가 된다며 ‘헬조선’ 운운하고, 집값이 뛰니 이번엔 ‘내집 마련이 멀어졌다’며 또다시 ‘헬조선’ 타령하는 식이다.
어떻게든 현실을 지옥처럼 묘사
모든 경제 현상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고, 일정한 사이클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부정적 측면만을 부각하기 위해 교묘하게 통계를 짜깁기하는 게 한국에서는 고질병처럼 돼버렸다. ‘중산층은 줄고 하류층이 늘었다’는 통계도 그렇다. 2015년 수치를 ‘하류층’ 비율이 유독 적은 1994년과 비교해 하류층이 크게 늘었다고 떠들어댄 것이다. 국토부 PIR처럼 10년 전과 비교하면 중산층은 늘고 하류층은 줄었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일반인의 생각과는 달리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통계청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산정 방식을 바꾸겠단다. 경기 진단도 그렇다. 아무리 경기 호전을 알리는 지표가 나와도 외면하고 “경기가 최악”이라고들 말한다.
기어이 한국을 지옥처럼 묘사하려는 ‘부정의 확증편향’이 전염병처럼 퍼져 있다. 정치권, 언론, 정부 모두의 책임이다. 자기비하와 냉소를 사회 전반에 퍼뜨리고 잘못된 정책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이런 악순환을 이젠 끊어야 하지 않겠나.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며칠 전 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국토교통부의 ‘2016년 일반가구 주거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이 5.6으로 나와 조사를 시작한 2006년 이후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한푼도 쓰지 않고 돈을 모아도 내집을 장만하려면 5.6년이 걸린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헬조선!”을 떠올린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PIR은 보통 중위 집값을 중위 소득으로 나누어 산정한다. 국내에서 PIR을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곳은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연구원, 국민은행, 한국주택금융공사 등이다. 문제는 조사기관마다 소득이나 집값을 산정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데 있다. 결과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국토부가 인용한 국토연구원 자료에서는 PIR이 2006년 4.2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반면 국민은행의 PIR은 2008~2014년 4.9~5.2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2015년(5.3), 2016년(5.7) 두 해에 크게 올랐다.
집값 올라도, 내려도 '헬조선' 타령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PIR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1991~2007년 통계를 보면 한국과 일본의 PIR은 장기적으로 하향곡선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캐나다가 장기 상승세를 보이며 2000년을 전후해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2014년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산출한 PIR 역시 장기 하락세다. 1986년을 100으로 봤을 때 2007년 43.7, 2013년 38.5 등으로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2015년과 2016년에 PIR이 높아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이전 기간 PIR 추이는 조사기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도 특정 기관의 자료를 특정 기간만 잘라서 PIR이 계속 최악으로 치닫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문제다.
재밌는 것은 PIR에 큰 변화가 없던 2012~2014년에는 이른바 ‘하우스 푸어’ 이슈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됐다는 점이다. 2014년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이 나온 배경이기도 했다. 집값이 떨어지면 빚을 내 집을 산 서민들이 ‘하우스 푸어’가 된다며 ‘헬조선’ 운운하고, 집값이 뛰니 이번엔 ‘내집 마련이 멀어졌다’며 또다시 ‘헬조선’ 타령하는 식이다.
어떻게든 현실을 지옥처럼 묘사
모든 경제 현상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고, 일정한 사이클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부정적 측면만을 부각하기 위해 교묘하게 통계를 짜깁기하는 게 한국에서는 고질병처럼 돼버렸다. ‘중산층은 줄고 하류층이 늘었다’는 통계도 그렇다. 2015년 수치를 ‘하류층’ 비율이 유독 적은 1994년과 비교해 하류층이 크게 늘었다고 떠들어댄 것이다. 국토부 PIR처럼 10년 전과 비교하면 중산층은 늘고 하류층은 줄었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일반인의 생각과는 달리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통계청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산정 방식을 바꾸겠단다. 경기 진단도 그렇다. 아무리 경기 호전을 알리는 지표가 나와도 외면하고 “경기가 최악”이라고들 말한다.
기어이 한국을 지옥처럼 묘사하려는 ‘부정의 확증편향’이 전염병처럼 퍼져 있다. 정치권, 언론, 정부 모두의 책임이다. 자기비하와 냉소를 사회 전반에 퍼뜨리고 잘못된 정책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이런 악순환을 이젠 끊어야 하지 않겠나.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