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관료보다는 민간 출신을 선호했다. 한명숙 총리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는 모습. 한경DB
노무현 전 대통령은 관료보다는 민간 출신을 선호했다. 한명숙 총리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는 모습. 한경DB
정권 초기에는 비관료 출신을 내각에 등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험적 인사를 통해 전 정권과 차별화를 꾀하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려는 목적에서였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초대 내각이 대표적이다. 이 전 대통령은 유독 교수 출신을 선호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 김도연 서울대 공과대 학장을 임명한 것을 비롯해 김성이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보건복지부 장관에, 이영희 인하대 법학과 교수를 노동부 장관에 앉혔다. 김성이 교수와 이 교수는 MB 대선 캠프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각각 몸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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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경험이 없는 비관료 출신 장관들은 초반부터 MB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김도연 장관과 김성이 장관은 불과 5개월 만에 물러났다. 김도연 장관은 모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2000만원의 특별교부금을 도서구입비 명목으로 전달했다가 문제가 돼 사퇴했고, 김성이 장관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논란은 외교통상부가 협상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며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했다가 옷을 벗었다.

이 전 대통령은 경제팀에도 민간 출신을 보냈다. 초대 경제수석에 관료 대신 학자 출신인 김중수 씨를 발탁한 게 대표적이다. 정치권과 관가에는 이 전 대통령이 건설회사 최고경영자(CEO) 시절 공무원의 복지부동 문화 때문에 애를 먹어 관료를 불신하게 됐다는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이 전 대통령의 관료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윤증현 씨를 기획재정부 장관에, 역시 전 정권에서 차관을 지낸 진동수 씨를 금융위원장에 임명해 ‘급한 불’을 끄게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파격적인 인사실험을 많이 했다. 취임 초기엔 관료에 대한 불신이 매우 강했다. 여성인권·환경운동가 출신인 한명숙 씨를 환경부 장관과 국무총리에 임명했고, 판사 출신인 강금실 씨를 법무부 장관에 앉혔다. 이 같은 인사가 공직사회를 이끌어가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총리 시절인 2006년 12월 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12%까지 떨어졌고, 강 장관에 대해선 검사들이 집단 반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정책 운영의 중심을 내각이 아니라 청와대에 둔 정권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첫 문민정부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역대 정권 중 가장 많은 49명의 청와대 비서관을 둔 것이 단적인 예다. 선거를 도운 정치권 인사들이 청와대에 대거 들어가면서 청와대 참모 진영이 대선 캠프나 다름없었다.

함성득 한국대통령학연구소장은 “선거운동팀(campaigning team)과 국정운영팀(governing team) 간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한 실책”이라고 평가했다. 그 결과 YS 정부 5년간 국무총리가 여섯 번이나 바뀌는 등 내각이 불안정한 상태를 이어갔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