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뉴 코크 신드롬'
“인생을 5개 공 돌리기(저글링)라고 생각해보자. 가족 건강 친구 영혼(나의 자아)이라는 4개의 공은 유리공이고, 일(직장)만 고무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4개의 유리공은 떨어뜨리면 상처 나고 깨져버린다. 오직 고무공만 놓쳐도 다시 튀어오른다. 당신의 인생에서 이 5개 공들이 균형을 갖도록 노력해라.”

더글러스 태프트 전 코카콜라 CEO의 2000년 회사 신년사다. 뉴밀레니엄이 열린다며 지구촌 전체가 조금은 들떴던 전환기였다. ‘삶이란(Life is…)’ 제목의 이 신년사는 다시 봐도 한 편의 중후한 에세이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그 길의 한걸음 한걸음을 음미하는 여행’이라는 끝 부분은 현자의 깊은 사유(思惟)물 같다. 숱한 신년사, 기념사들과는 달랐다. 그때 원문을 돌려봤던 직장인들 사이에는 “역시 세계일류 회사!”라는 탄성이 적지 않았다. “회사가 잘돼야 내가, 내 가족도 잘되니 오직 힘을 다해 일하라는 우리 사장과 너무 비교돼 속으로 울었다”는 반응도 있었다.

지금은 애플 구글 같은 IT기업에 밀렸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브랜드가치 1위 기업이 코카콜라였다. 성공 분석도 많았고 경영학 책에서도 늘 거론됐다. 1886년 5월 애틀랜타의 늙고 가난한 약사 존 펨버턴이 창업한 코카콜라는 20세기 미국 문명의 상징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에 팔리는 제품이 400종류 이상’ ‘코크(Coke: 코카콜라 애칭)가 없는 나라는 북한과 쿠바뿐’ ‘매일 7억 잔 이상 판매’….

신화를 양산한 코카콜라였지만 ‘현대병(病)과의 전쟁’을 피해가진 못했다. 탄산음료가 비만과 당뇨의 주범으로 몰린 것이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과 이익 모두 지난해보다 떨어졌다.

이 와중에 52세의 제임스 퀸시 CEO가 지난 1일 거함 코카콜라의 함장이 됐다. 취임 구호는 ‘뉴 코크 신드롬’. 무사안일 타파, 변화 불사로 혁신하자는 캠페인이다. 엊그제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그는 이 구호를 ‘실수하라’로 풀어서 강조해 화제가 됐다. “실수를 않는다는 것은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부연을 보면 17년 전 태프트 CEO의 신년사와는 사뭇 달라졌다.

젊은 CEO의 이력이 흥미롭다. 영국에서 나서 자랐고 리버풀대에서 전기를 공부한 공학도였다. 1996년 입사해 2015년 COO(최고운영전문가)로 승진한 뒤 이번에 CEO 자리에 앉았다. 그가 부임하자마자 CMO(최고마케팅책임자) 자리부터 없애버린 것도 주목을 끌었다. 차·생수로도 방향을 돌린다지만 아직 매출의 70%가 탄산음료인 코카콜라를 퀸시가 구해낼 수 있을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