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복지국가’를 목표로 하는 30년 이상의 장기 국가운영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12일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개별 현안을 챙기느라 중장기 국가운영 비전을 내놓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노무현 정부 때의 ‘국가비전 2030’과 같은 장기 플랜을 청와대가 주도적으로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직제개편에 따라 대통령 비서실장 직속으로 신설된 재정기획관이 ‘국가비전 2050’(가칭)을 수립할 계획이다. 장기 국가운영계획은 노무현 정부 때 추진한 국가비전 2030의 ‘문재인 버전’으로 30년간의 복지정책과 재원 조달 방안을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복지국가 구상을 구체화한 국가비전 2030을 내놓았다. 당시 정부는 “한국이 2010년대에 선진국에 진입하고 2020년대에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해 2030년에는 ‘삶의 질’ 세계 10위에 오른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청와대가 구상하고 있는 장기 국가운영 계획안은 노무현 정부의 국가비전 2030과 비슷한 개념이다. 국가비전 2030은 한국이 △국민연금 개혁 완료 △육아비용 부모 부담률 37%로 축소 △근로장려세제(EITC) 전체 가구의 21.2%까지 확대 등 성장과 복지 동반성장을 위해 추진해야 할 50개 과제를 담고 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복지지출 비중이 2005년 25.2%에서 2030년 약 40%까지 높아져 복지 수준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위해 1100조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10년까지는 제도 개혁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추가 재원 조달은 없다”면서도 “2011년 이후 추가 재원 마련의 구체적 방안은 국민과 협의해 논의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원을 마련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해 공허한 장밋빛 보고서라는 비판이 많았다.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물가 상승을 고려한 재정 규모는 400조원으로, 2030년까지 국민 한 사람이 매년 최소 33만원(당시 가치 기준)씩 더 부담하면 된다”고 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복지 재원을 충당할 성장정책이 빈약하다는 우려도 있었다.

청와대가 이번에 비서실장 직속으로 재정기획관을 신설한 이유는 이런 배경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경제정책수석실에서 국가비전 2030을 관할하도록 해 재정 문제를 간과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장기 계획을 마련하는 데 재정이 중요하다는 것이 대통령의 판단”이라며 “중장기적인 비전은 물론 예산 조달 방안까지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재정기획관은 비전을 세우는 과정에서 전체 예산 계획과 재원 충당 방식을 설계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장기 플랜을 마련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증세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노무현 정부 때도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조차 국가비전 2030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소모적 증세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결국 집권 말기 추진 동력이 떨어지고 정권이 바뀌면서 계획은 흐지부지됐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